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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26. 선악의 구분

기자명 법보신문

악으로부터 멀어지는 순간 선은 곁에 와 있다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원심회 김장경 회장

선한 일은 서둘러 행하고
악한 일에는 마음을 멀리하라
선한 일을 하는 데 게으르면
그의 마음은 벌써 악을 즐기고 있다
 - 『법구경』

불교의 선과 악에 대한 가르침은 「칠불통계(七佛通戒)」가 근본이 된다. 과거의 일곱 분 부처님께서 공통적으로 가르치신 경책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그 뜻을 살펴보면, ‘모든 악은 행하지 않고(sabbapapassa akaranam), 뭇 착함은 받들어 구족한다(kusalassa upasampada)’는 것이 기본이다. 한문으로 번역되면서 이 글은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이라는 경구로 유명하다. 이 칠불통계는 『유부율계본』, 『법구경』, 『증일아함경』서품, 『출요경』 등 많은 경전에서 중요하게 전하고 있다. 또한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3업이 ‘악을 짓고 있으면 이미 선이 아니고 선을 실천하고 있으면 이미 악이 아닌 것’이 10선과 10악의 논리이다.

따라서 우리의 일상은 선이 아니면 악으로 이미 방향을 정해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계(戒)를 지킴으로써 이미 있는 악함은 끊으려고 노력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며, 현재 간직하고 있는 선함은 지켜가려고 노력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은 일어나도록 하는 불교 수행의 근본이 곧 부처님 제자들의 삶의 모습이다. 불교에서는 결정적으로 선악이 다른 것이라고 나누어서 보지 않는다. 오직 나의 마음과 행위가 무엇을 향하고 있느냐에 따를 뿐이다.

산사람도 지옥 경험하는 도살장

부처님 제자가 추구하는 최고의 아름다운 경지는 선과 악이라는 구별조차도 뛰어넘어서 우리의 행위 그 자체가 모든 생명을 괴롭히거나 손해를 끼치지 않는 삶으로 채워져 있을 때라고 한다. 이것이 칠불통계가 추구하는 ‘스스로 맑은 마음의 소유자(sacittapariyodapanam, 自淨其意)’가 되는 길이다. 결국 선악으로부터도 초월해서 최고의 청정함과 안온함으로 모든 생명에게 다가가는 것이, 곧 모든 부처님 가르침의 공통점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고 변명하지만 생명에 대해서 너무나 잔혹하다. 쇠고기 파동으로 알게 된 우리 삶의 모습은 너무나 선하지 못하다. 동물보호운동가인 게일A. 아이스니츠가 잠입 취재를 통해 밝혀낸 보고서가 『도살장』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에 의하면 미국 도살장 내부의 참혹한 실상은 오직 ‘탐욕과 이윤’을 남기려는 인간의 끔찍한 욕심이 이뤄낸 결과라고 결론짓는다. 인간이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수천수만의 동물을 생지옥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심지어 사람으로 태어난 도살장 직원들조차 지옥의 삶을 살게 하는 엄청난 일이 도살장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모든 악의 부산물인 동물의 고기를 우리는 먼 다른 나라에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매일 탐닉(耽溺)하고 있다. 이 또한 부처님의 말씀처럼 연기(緣起)의 법으로 살펴보면 우리 모두는 선하지 못한 일에 가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일축해 버린다면 우리는 너무나 어질지 못하다. 인간의 삶을 위하여 희생된 수많은 동물에게 우리 모두 깊이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선악에 대해서는 『성경』 창세기의 에덴동산에 있는 선악과나무 열매의 이야기도 유명하다. 기록에 의하면 이 선악과나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한다. 선악과를 먹은 다음 선악의 헤아림은 인간의 능력이 된다. 여기에서 문제는 그 선악의 잣대가 공평해야 하며 너와 나의 차별이 없어야 하는데, 인간의 행위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신이 미리 금지했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기독교의 선악과는 분명 신이 창조한 것이고 신의 소유인 기쁨과 행복을 의미하는 에덴동산에 있었다. 신이 창조한 그 기쁨의 동산에 선악과나무가 있었고 뱀의 유혹에 의하여 인간은 신의 의지에 반하는 행위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되어 일생동안 고통의 삶을 사는 나락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자신의 잣대 벗어난 선 구현돼야

이 이야기는 불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애당초 인간에게 선악에 대한 의지는 불필요한 것이며, 오직 신만을 믿고 순종하는 것만이 기독교의 선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앞의 칠불통계에서는 우선 선악을 정확히 분별하게 한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선악을 뛰어넘은 청정한 본질인 자신의 마음을 챙기라고 가르치고 있다.선악에 대한 불교의 칠불통계와 기독교의 에덴동산 선악과 이야기는 선악이라는 용어 사용에는 동일하지만 전개되는 과정에서는 선악을 인식하는 주체의 문제에 있어서 서로 상반되는 입장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고통의 현실에서 어떤 의미의 선이든 선의 쪽을 택하고 고통의 삶에서 탈출할 것을 가르치는 입장은 다시 동일하다고 본다. 한편에서는 선악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신에 의한 구원을 획득하는 것이다. 어떠한 결과에 이르든 선의 쪽으로 나아가기를 요구한다. 더욱이 자신의 잣대가 아닌 선함 그 자체가 구현되도록 강조한다. 스스로 청정해서 기쁘고 신의 구원이 있어서 기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작열하는 태양아래서 생명이 모두 고통스럽지 않고 선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 길을 찾아서 모두 길을 떠나 보도록 하자. 그리하여 어떠한 유혹도 뿌리치고 선에 게으르지 않고 악을 즐기지 않는 삶을 살도록 다짐해야 한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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