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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촛불을 끄려면

기자명 법보신문

[논설위원 칼럼]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

고위직공무원을 지내다 은퇴하고 시골에 내려가 있는 친구가 있다. 지난 달 서울에 올라와 저녁을 같이 했는데 시청 앞 촛불집회에 가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 친구는 그러한 대규모 집회는 누가 조직적으로 동원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비단 광우병 위험성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 뿐만이 아니고 대운하, 강부자, 고소영 등 국민의 건강권과 정서를 소홀이 취급한 현 정권의 오만에 대한 국민의 항의는 당연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매일 밤 시골집에서 다른 유형의 촛불집회를 즐긴다는 것이었다. 집에 가로등을 하나 세웠는데 밤이면 무수한 날벌레들이 등 주위에 날아들어 축제를 벌이는 그 광경이 시청 앞 촛불대회에 못지않다는 것이다. 낮에는 보지 못했던 각종 나비, 갈다귀 등 그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형형색색의 날벌레들이 가로등 주변에 모여드는데 생명의 무한한 다양성과 역동성에 우주의 신비한 조화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광우병 걱정 없는 한우와 소주를 준비해 놓을 터이니 내려오라고 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현 우리나라의 정치체제에서 대통령의 임기가 단임으로 5년에 제한되어 있고, 또 임기말년의 레임덕 현상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은 4년 정도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압도적 표차로 정권을 잡았으나 취임 후 불과 수개월 만에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했고 서울광장 촛불집회에서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수모를 당하고 있다. 그가 앞으로 더 얼마간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 어려운 정치적 상황이 누구 책임인가? 물론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에게 있다. 그로서는 억울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정부의 이야기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이 부당하게 과장되었고, 이는 일부 매스컴과 진보세력들이 의도적으로 날조하여 국민을 오도한 탓이라고 한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미쳐 일할 기회도 주지 않고 국민을 속여 몇 달간 국정을 마비시킨 사람들의 책임은 참으로 무겁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남은 문제는 소위 진실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부가 수입하기로 고시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에 대한 정부와 일부 진보세력 의 주장 중 어느 것이 옳은가 이다.

『반야심경』에 ‘진실불허 (眞實不虛)’라는 구절이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변해가고 우리 목숨 또한 그 앞길을 예측하기 어렵다. 이러한 허망한 세상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반야심경』은 허망하게 마치지 않으려면 오직 진실하게 살라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다 허망하게 사라지지만 오직 진실한 것만이 영원히 남기 때문이다.
세상일의 진위에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진실은 시간 속에서 결국 그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우리는 광우병문제의 진실이 조속히 밝혀지도록 함께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광우병괴담의 진원지인 MBC PD수첩도 정부가 요구하는 인터뷰 원본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촛불시위 주도의 혐의를 받고 조계사에 피신하고 있는 광우병대책위 간부들도 조계사를 떠나 그 결백함을 떳떳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국가를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시골 친구의 가로등에는 밤마다 끊임없이 날벌레들이 모여들고 있다. 거기에 진실하지 않은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 정부가 진실하지 않다면 밤마다 끊임없이 세종로에 촛불이 넘쳐흐를 것이다. 방패와 물대포, 명박산성이 있어도.

이기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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