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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 깊은 책읽기] 나는 영어성경이 두렵다

기자명 법보신문

『세상을 바꾼 12권의 책』/멜빈 브래그 지음 / 랜덤하우스

『킹 제임스 성경 the King James Bible』은 영어권 국가 전체의 기본 성경이면서 수세기 동안 영어권 국가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고 합니다. 이 성경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4백 년 전에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런던에서 50여 명의 학자들이 수년에 걸쳐 만든 것이며, 지금도 독보적인 영어 성경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321쪽).

아시다시피 성경은 처음부터 영어로 출간되지는 않았습니다. ‘않았다’가 아니라 ‘못했다’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성경은 라틴어로 읽혀져야 했고 라틴어로 쓰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따금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그 나라의 보편적인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던 학자들이 있기도 했지만 이는 자기 목을 내놓아야 하는 어마어마한 ‘엉뚱하고 철없는’ 배교적 행위였습니다. 전혀 새롭거나 정반대의 해석을 내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제 나라 언어로 옮겼다는 이유만으로 재판에 회부되거나(존 위클리프) 심지어는 교수형을 당한 학자(윌리엄 틴들)가 있다는 사실이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찌 되었거나 신구교의 갈등과 정교(政敎) 분리의 진통 속에서 성경은 국가적인 사업으로서 영어로 번역되는 순조로운 길로 접어듭니다. 이렇게 하여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성경이 바로 스코틀랜드 출신의 왕 제임스6세의 이름을 딴 『킹 제임스 성경』입니다.
그 후 미국이 17세기에 아메리카대륙을 지배하면서 원주민들이 저지르는 온갖 ‘이단적’ 행위들을 재판해야 했는데 이때 뭔가 정신적인 원리와 기준이 필요했었고 그 역할을 바로 『킹 제임스 성경』이 톡톡히 해내었습니다. 그리하여 미국은 이 성경을 받아들여 전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할 수 있었고, 이 성경의 언어인 영어는 바로 미국의 힘 그 자체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책에서는 『킹 제임스 성경』이 무슨 이유에서 ‘세상을 바꾼 12권의 책’ 속에 들어갔는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매우 극적인 필치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성경 덕분에… 기독교가 전 세계의 대표 신앙이며, 기독교의 신이 진정한 신이요, 예수만이 참된 구세주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지난 4세기 동안 인류의 사상은 그 어떤 강령이나 교리보다 이 성경에게서 더 큰 영향을 받았다.”(340쪽)라는 식입니다. 하지만 필자의 설명을 읽다보면 영어성경의 위대함에 탄복하기는커녕 오히려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요즘 영어 공교육과 관련하여 온 나라가 시끌벅적합니다. 영어 하나라도 배워 오면 그게 어디냐면서 온 식구가 아버지 혼자만 달랑 남겨두고 타국으로 날아가는 촌극도 벌어집니다. 2주마다 지구촌 어디에선가 고유 언어 하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이 온 인류, 전 세계의 민족과 언어의 다양성과 주체성을 말살한 원흉으로 지탄받을 날이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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