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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효 칼럼]

기자명 법보신문

불도(佛道)의 세가지 차원-1

모든 존재, 다양한 욕망이 나툰 현상
존재자만을 강조한 형이상학과 달라

불교의 제1기는 인도를 중심으로 한 친(親)철학적 교종(敎宗)의 시대고, 제2기는 중국과 동북아를 중심으로 한 반(反)철학적 선종(禪宗)의 시대고, 제3기는 21세기 이후의 미래적 불교의 시대로 대중적 실천불교의 시대겠다. 나는 앞으로 3기에 걸친 불교사의 사상사적 특성을 하나씩 약술하려는데, 이번에는 총론적 입장에서 말하련다.

교종의 철학적 사유와 선종의 반철학적 사유는 다 공통적으로 인류가 습관적으로 익혀온 것과 전혀 다른 길이다. 그 다른 길을 나는 교종의 존재론적 사유, 그리고 선종의 자연적 사유라고 명명하련다. 교종의 존재론과 선종의 자연론은 명명은 다르지만, 실로 같은 차원의 도를 언명한 것이다.

인간은 ‘도대체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한다. 이것이 철학적 물음의 시작이다. 부처님 이전과 이후에도 인간은 존재를 늘 ‘존재하는 어떤 것’(존재자)과 일치시켜 생각하는 습관을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존재와 존재자와의 철학적 차이를 처음으로 강조한 이가 20세기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다. 그동안 인류의 철학은 천지산하와 동식물 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서, 그 명사적 주어가 존재한다는 데에 주목하고, 자동사로서의 ‘존재한다’는 의미를 주어인 명사의 부가술어(附加述語) 정도로만 간과해 왔었다는 것이 하이데거의 지론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자동사적 ‘존재하다’의 의미가 주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주어들에 다 적용되는 하나의 공통근거라고 보았다. 자동사로서의 ‘존재하다’는 명사들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명사들을 가능케 하는 행위로서의 근거다. 이 우주의 존재는 주체가 없는 생멸의 행위고 생기하고 소멸하는 사건이다. 이것이 부처님이 보신 존재론적 사유다. 따라서 ‘존재하다’와 동의어인 생기함이나 일어남의 사건은 눈에 보이지 않는 텅빈 공의 가시현상이다. 비어 있음(空)은 허공과 같은 무한 수용력이고 동시에 무한 존재자들을 생기시키는 보시력이다.

‘존재하다’와 같은 공통동사의 근거가 공이므로 좥신심명좦의 구절 처럼 ‘有卽是無(존재=무=공)고 無卽是有(무=공=존재)’가 된다. 그 ‘존재=공’이 바로 존재론의 핵심이다. 일반 존재자의 형이상학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 존재론의 사상이 그동안 인류의 형이상학에서 온전히 충분하게 검토되지 못하였다. 부처님이 정견하신 이 존재론적 사유를 인류는 대체로 몰이해했다.

이 존재론적 사유는 우주의 모든 현상의 근거에 해당한만큼, 생기(또는 소멸)하는 ‘존재=서건’으로서 그것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모든 현상에 다 적용된다. 이 우주의 존재방식은 동일한 근거인 공의 자기 보시(증여)와 같다. 말의 존재는 천리를 달리고 싶은 욕망이 공의 에너지에서 솟은 색신(色身)의 모양이고, 인간의 존재는 말하고픈 간절한 욕망이 공의 에너지에서 스스로 진화한 것이고, 사자는 엄청남 괴력으로 용맹스러워지려는 공의 에너지가 스스로 욕망한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존재=공’의 현상은 곧 무한히 텅빈 마음의 욕망이 그렇게 색신의 모양으로 나툰 것이다. 그렇다면 삼라만상의 존재방식은 마음(존재=공)의 욕망방식의 다양성에 다름 아니다. 일체유심(一切唯心)의 철학이 여기에 있다. ‘공=존재’가 마음의 자연적 사고방식(=宇宙心)과 상통하는 셈이다. 이 자연적 사고방식이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무의식이다. 불교의 교종은 ‘존재=공=무의식(자연심=우주심)’의 상관관계를 가르친다. 이것이 뒤에 선종을 솟아오르게 한다.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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