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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기자명 법보신문

중화문명 퍼포먼스 핵심은 ‘문자’
우리 불교계도 지식 폄하 말아야

인류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선수와 응원객을 위시한 관광객은 물론이고 세계 100여개 나라의 정상들이 베이징에 모여들었다. 잔치도 큰 잔치다. 이날의 개막식을 밤늦도록 지켜봤던 것은 중국인들의 문화의 역량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겼기 때문이다.

준비 단계부터 관심을 끌었던 새 둥지 모양의 주경기장은 로마의 콜로세움 이후 가장 이색적이고 독특한 건축물로 평가받기도 했다. 토테미즘(totemism)은 한 사회나 개인이 동물이나 자연 대상물과의 신비적 관계 또는 친족관계가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 복합적인 관념이나 의식으로 인류의 정신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 많은 상징 중에 하필 새 둥지였을까?

새 둥지에는 새가 사는 법, 어쩌면 다시 비상하고 싶은 중화민족 염원의 발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막식 행사는 주최국의 역사와 문화를 유감없이 펼칠 수 있는 공인된 선전의 장이다. 세계적 영화감독이기도 한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5천년 중화문명 퍼포먼스의 핵심을 나는 ‘문자’와 ‘종이’, ‘음악’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인류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중국의 4대 발명품은 제지술, 나침반, 화약, 인쇄술이다. 이 발명품들은 아라비아 상인들과 몽고의 유럽원정(13세기)을 통해 전파되어 그들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유럽인들은 나침반으로 대항해시대를 열고, 화약은 대포제조로 발전하여 시민사회로 나아가는 기틀이 되었다. 특히 인쇄술은 후일에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으로 이어지면서 성서의 대량 보급에 따라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면서 중세천년의 종말을 초래했다.

『회남자(淮南子)』「본경훈(本經訓)」에는 “창힐이 문자를 만들자 하늘이 곡식을 비처럼 뿌리고 귀신이 밤새도록 울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무슨 뜻일까? 문자를 통한 인간이성의 확장과 습득이 인간역사의 시작이란 말인가. 컴퓨터 자판 같은 활자의 군무(群舞)는 아름다웠고, 공자의 삼천제자로 분장한 이들이 죽간을 들고 나와 펼치는 모습은 당시의 공자 회상을 보는 것 같아 더없이 장엄하게 느껴졌다.

공자 『논어(論語)』의 첫머리인「학이(學而)」편은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로 시작된다. 배움은 시기가 중요하다는 말도 된다. 익힘은 반복을 뜻한다. 이 배움을 통해 인간은 향상되어 지는 법인데, 이 단순한 이치를 사람들은 들으려하지 않는다고 한탄했던 공자다. 이 ‘인간되어짐’의 길을 담아내는 ‘문자’라는 문명의 우월성을 만 천하에 알리면서, “벗이 있어서 먼 곳에서부터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는 행사의 주제는 주인이 베푸는 큰 환대처럼 통 크게 다가왔다.

문득, 문자와 글, 지식을 하근기의 것으로 폄하하며 ‘깨달음’을 절대시하는 우리의 수행풍토에서, 천년 뒤 과연 무엇이 전해지고 무엇이 남을지, 도리어 문자를 너무 안 써서 하늘이 우는 일은 없을지…, 그랬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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