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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사찰패러다임, 낙산사서 찾는다]① 사찰,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생각

기자명 법보신문

수행-기도-포교 공간 분리…관광사찰 탈피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사찰은 우리 생활과 떨어질 수 없는 공간이었다. 민중들의 정신적 귀의처였고 다양한 문화가 꽃피는 무대였으며 사회적 약자들의 의지처였다. 그러나 최근 잇따르는 종교편향사건들이 대변하듯 추락하고 있는 불교의 위상은 그 끝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원인에 대해 8·15광복 이후 수립된 친기독교 정권을 비롯한 외부적 요인들을 손꼽기도 하지만 불교계 내의 자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어린이·청소년 등을 주축으로 하는 포교 강화, 사회의 약자를 보살피는 복지사업의 확대, 그리고 새로운 문화 창출의 리더로서 자리매김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본지에서는 2005년 발생한 화재의 아픔을 딛고 도량복원의 대작불사를 진행하는 동시에 지역 사회의 포교, 복지, 문화 중심 도량으로 괄목할 만한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낙산사의 사례를 통해 사찰이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포교-복지-문화의 역량을 확대시켜나가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의식은 무엇이며 실천해야할 방향은 무엇인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원통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낙산사 복원불사 조감도. 원통보전 주변의 건물들은 수행·교육 공간으로 사용된다. 그 아래가 관광객과 재가불자들을 위한 생활공간이다.

“잃어버린 영화의 꿈속에 있기보다는 100년을 바라보면서 복원하겠습니다. 나무 한 그루 심는 것부터 기둥 하나 세우는 일까지 50년, 100년 후를 생각하면서 불사하겠습니다.”
2005년 4월 5일, 한 순간 불어 닥친 화마로 미증유의 상처를 입은 직후 낙산사 주지 정념 스님은 전 국민을 향한 호소문에 이런 다짐을 밝혔다. 정념 스님이 언급한 ‘100년 후를 생각한 불사’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2005년 화재 발생 이전까지 낙산사는 강원도를 대표하는 최고의 ‘관광지’ 가운데 하나였다. 동해에 인접해 있고 낙산사동종(보물 제479호)과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2호) 등 다수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고찰.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대한민국 3대 관음성지에 속하지만 국민들에게 낙산사는 동해안 지역의 손꼽히는 ‘볼거리’라는 인식으로 더 강하게 각인돼 있었던 것이다.

낙산사는 1300여 년 전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래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중창을 거듭하며 사격을 키워왔다. 그러나 6·25한국전쟁으로 도량 전체가 소실된 이후 1953년부터 시작된 복원 공사를 거치며 현대에 이르렀다. 그 사이 낙산사 도량 내에는 필요에 따라 수많은 전각들이 들어섰다. 낙산사가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조선 세조 시대를 능가할 만큼 대규모의 전각들이 낙산사 경내를 빼곡히 채워 나간 것이다.

관광객에 밀려났던 ‘수행처’ 복원

“대부분의 사찰들이 그러하듯 낙산사도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전체적인 복원 불사의 계획 보다는 필요에 따라 전각을 증축하는 형태의 불사가 진행돼 왔습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그 결과 수행과 포교라는 사찰 역할의 양축이 오히려 약화되는 부작용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화재 직후 복원 불사의 큰 틀을 구상하던 정념 스님은 사찰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복원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사찰은 본래 스님들의 수행처였다. 동시에 불자들의 기도처이며 지역민들을 위한 포교와 복지의 공간이 돼야 했다. 이것이 낙산사 복원의 가장 큰 밑그림이었다.

낙산사는 우선 출가자와 재가자를 위한 두 곳의 구역으로 크게 구분했다. 낙산사 전체의 지형상 비교적 상층 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원통보전과 그 주변은 수행 공간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출입하는 홍예문을 시작으로 보타전까지 이어지는 경내의 오른편은 관광객 등 재가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설정됐다. 그리고 낙산사의 또 다른 중심 공간인 홍련암은 기도처로 분류됐다. 수행과 기도를 중심으로 관광객을 비롯한 재가자의 공간을 분리해내는 설정이었다.

이러한 설정은 복원을 위한 단순한 이론적 토대가 아닌 지역사회에서 낙산사의 역할을 재설정하겠다는 새로운 의지의 표현이었다.

“낙산사는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사찰이었습니다. 사찰 재정의 상당부분을 문화재관람료에 의지하고 있는 동안 포교와 복지 등 지역민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다소 소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찰 내에 신도들이나 지역민들을 위한 교육시설 등의 공간이 절대 부족했으며 일 년 내내 이어지는 관광객들로 인해 수행처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힘든 지경이었습니다. 공간의 분리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시각의 설정이었습니다.”

지난 2007년 11월 16일 낙성된 원통보전을 중심으로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수행공간에는 현재 정취전, 설선당, 응향각, 빈일루 등 새로운 전각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들 건물은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등이 그렸던 낙산사 전경에 묘사돼 있는 원통보전 주변의 건물들이다. 당시의 용도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낙산사 측은 이 건물들을 수행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원통보전 앞 좌우로 배치된 정취전과 설선당은 스님들의 수행처인 동시에 신도들의 교육공간으로, 특히 전면의 응향각은 단기출가를 희망하는 신도들을 위한 무문관 형태의 수행공간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스님들의 숙소인 고향실, 근행당도 원통보전 왼쪽 편에 배치해 수행정진에 방해가 없도록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쓰임에 따라 복도 되고 화도 돼”

기도공간인 홍련암을 찾는 기도객을 비롯해 템플스테이 공간으로 사용하게 될 취숙헌과 관광객들을 비롯해 신도들의 공양간으로 사용되는 선열당 등은 원통보전 공간과는 분리되는 아래편 구역에 차례차례 들어섰다.현재 진행 중인 이들 불사는 오는 가을 즈음 대부분 마무리될 전망이다. 빠르면 올 연말부터는 템플스테이를 비롯해 재가자 단기출가나 스님들의 안거입재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념 스님은 “삶이란 쓰는 자에 따라 복이 되기도 하고 화가되기도 하는 법”이라며 “사찰이라는 공간 역시 무엇으로 인식하고 사용하는가에 따라 수행처가 될 수도 있고 한낱 관광지가 될 수도 있다”는 말로 이번 불사의 의미를 대신했다.

사찰이라는 공간에 대한 인식의 재정립은 사찰과 불교계가 지역사회와 시대의 변화 속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제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사찰이 수행과 포교, 복지와 문화의 중심으로 거듭날 준비를 하기 위한 첫 출발은 지금 이 시각에도 쉼 없이 진행되고 있는 전국 사찰의 각종 불사, 그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부터 시작돼야 함을 낙산사는 지난 3년여의 복원 불사를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양양=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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