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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은 맑은 물에 서리지 않는다

기자명 법보신문

[세심청심]보경 스님 서울 법련사 주지

『벽암록』은 선가의 문헌 중에서도 최고의 반열에 있다. 송 대의 설두중현(980~1052)과 원오극근(1063~1135)에 의해 완성된 이래 수많은 참선수행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설두는 운문종 계열, 원오는 임제종 계열로 둘 다 기질이 강한 촉(蜀)의 사천성 출신이다. 선은 문자에 의지하지 않고도 마음을 바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통적으로 선문에서는 궁극에 대한 섣부른 견해를 경계하는데, 이 책은 도리어 언설로써 그 난해한 문제를 드러내고자 한다. 지금도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화두’, 또는 ‘선문답’이라 하는데, 공부인의 기량은 한마디 던져보면 드러나게 되어있다. 구산 큰스님께서는 언제 어디서건 물으시곤 했었다. 묵묵부답으로 있다 해서 감춰지는 게 아니다. 그 또한 값이 매겨진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는 진리에 이르는 방법으로 대화를 주창했다.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면 마침내 바른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으로, 이 문답을 통한 사유의 과정을 출산에 비유해 ‘산파술’이라고도 한다. “물음은 답 속에 있고 답은 물음 속에 있다”(問在答處 答在問處)는 옛 선사의 말이, 도를 배우는 사람이 왜 탁마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청룡은 맑은 물에 서리지 않는다(澄潭不許蒼龍蟠)’는 말은 『벽암록』 ‘18則’에 나오는 것으로 내 자신이 읽는 순간 참으로 좋았는데, 오조법연선사가 “『벽암록』 가운데서도 설두의 그 한 구절을 좋아 한다”고 한 말을 보고 또 좋았었다. 용이 연못의 푸르고 맑음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물길이 거세게 들썩일 때라야 그 기운을 타고 승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맑고 고요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물길의 기세가 또한 용을 부르는 이치이기도 하다.

언청이인 한 여자가 아기를 밴 이야기가 있다. 여자는 산달이 다가올수록 초조했다. 다행히 한밤중에 출산을 하고는 그 없는 정신에도 등불을 들어 아기 얼굴을 살폈다고 한다. 혹시라도 자기를 닮지나 않았을까 했던 것.

범 종단적인 대 정부 항의집회가 서울 복판에서 있었다. 상식 이하의 종교편향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우리를 일어서게 했다. 그동안 역대 정권에서는 각자의 종교와 상관없이도 잘 지내와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경우라는 찬사를 들어왔는데, 이 정권 들어 무너지고 있다. 이제 우리 곁에 우리 말고는 우리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우리가 그만큼 대중교화에 소홀했다는 반증이다. 종단분규도 끊이지 않았었다. 처절한 자기반성이 필요한 때다. 그렇다고 지나친 피해의식도 안 될 것 같다. 불과 몇 달 전에 ‘운하 개발’이 초래할 자연환경 파괴를 불교계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막아내지 않았던가.

크릴새우를 먹기 위해 북극에서 남극까지 지구를 반 바퀴나 헤엄쳐가는 고래가 있다. 이 고난을 포기하면 고래는 살아남지 못한다. 이제 어떻게 ‘행복의 불교’를 선보이느냐가 우리의 미래다. 귀찮아도 어쩌겠는가? 우린 그동안 너무 고요했다.

보경 스님 서울 법련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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