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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생명을 빚어내는 예술가의 작업실

기자명 법보신문

『예술가로 산다는 것』박영택 지음 / 김홍희 사진/마음산책

우리 집은 외부인 출입금지입니다.

당연히 남들은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니까 ‘우리 집’이겠지만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 집안 공개하길 꺼립니다. 이따금 다짜고짜 현관문을 밀고 들어오는 가스검침원에게는 속수무책으로 집안을 공개해야 하는데 그때의 심정은 그야말로 무단으로 가택침입을 당하는 것 같아 황당하고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내가 너무나 청소를 하지 않고 지내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큰 맘 먹고 집안 정리를 하기도 합니다. 바닥에 뒤죽박죽 쌓여 있고 엉켜있던 책들을 서가에 가지런히 다시 꽂고 머리카락도 치웁니다. A4용지도 정리하고, 책상 위와 컴퓨터의 먼지도 닦아냅니다. 아주 깔끔해진 공간이 맘에 들어 흡족한 기분으로 커피를 한 잔 마시지만 이건 아주 순간의 호사입니다. 단 하루를 못 넘기고 책들은 다시 한 권씩 서가에서 뽑혀져 바닥에 던져집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나는 영원히 정리 안 된 서재에서 살아야 할 팔자인가보다 하며 포기합니다. 일주일에 칼럼 두어 편 쓰고 번역 조금 하는 내 집이 이토록 지저분한데 그림 그리는 사람들의 방은 어떨까요.

인테리어 잡지를 보면 소위 잘 나가는 예술가들의 집과 작업실이 자주 소개됩니다. 값을 가늠하기 힘든 장식품들이 아주 멋지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집안의 물건들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놓인 것이 없습니다. 나는 그들의 높은 인테리어 감각에 내심 경탄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아해집니다. 그렇게 자신의 취향이나 기호를 집안에 다 풀어놓아버리면 정작 캔버스에는 토해낼 것이 아무 것도 없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일기 때문입니다.
‘숨어사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기행’이라는 아주 멋진 부제가 딸린 이 책에는 열 명의 예술가가 등장합니다. 미술평론가 박영택 교수는 그들의 작업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들의 공간 속에서 예술가들의 현재를 보여주고 그들의 작품을 읽어줍니다.

그들의 작업실은 대체로 꾸며지지 않고 어수선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우며, 가급적 자연과 붙어 있는 공간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공간이 소탈하고 빈한할수록 예술가들은 무엇인가를 채우고 싶어 하게 되나 봅니다. 그들은 황량하기 짝이 없는 공간 속에서 추위와 더위와 가난을 견디며 새빨간 생명을 토해냅니다.

“그림을 보러 갔지만 돌아와 책상에 앉아 생각해보면 그것은 결국 지구상에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의 치열한 삶을 보고 온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책을 읽으며, 책 속 예술가의 누추한 작업실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나 역시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화랑가의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는 5초 이상 내 시선을 붙잡지 못했던 낯설고 모호하고 애매한 예술작품들이 실제로는 저런 처절하도록 고독한 공간속에서 작가가 자신의 또 다른 영혼을 불러내어 밤새도록 웅얼거리며 빚어낸 사리였음을 말입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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