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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과 덕이 있으면

기자명 법보신문

[논설위원 칼럼]보광 스님 동국대 교수

올 여름 방학에는 허응당 보우(虛應堂普雨:1507~1565) 스님에게 흠뻑 빠져들었다. 더위도 잊고 스님의 문집을 읽고 난해한 시를 해석하였다. 조선중기 숭유배불정책(崇儒排佛政策)으로 스님들이 광신적인 유생들의 모함으로 죽임을 당하고, 사찰은 그들의 횡포로 피폐되어 갈 때 불교중흥을 발원하였던 스님이다.
그는 사원에서 행패를 부리는 유생을 보고도 말 한마디 못하고 억울함을 참고 주먹을 불끈 쥐고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수행으로 자신을 연마하였으며, 내면의 세계를 넓혀갔다. 대장경을 열람하고, 유서(儒書)를 보았으며, 주역까지도 섭렵하였다. 이로 인해 그의 인품은 세간에 널리 알려졌고, 지각 있는 유생들은 그와 시를 주고받으며 교류하였다.

13살의 어린 명종(明宗)이 등극하자 불심 깊은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면서 불교를 일으킬 인재를 찾던 중 40대 초반의 보우 스님을 소개 받고 봉은사 주지와 선종판사(禪宗判事), 즉 선종의 종정으로 모시고 승과 제도를 부활하여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선발하였다.
그는 많은 상소와 갖은 고초 속에서도 불교중흥의 기반을 마련하였으나 50대 중반에 제주도로 귀양 가서 변협(邊協)이라는 제주목사에게 순교(殉敎)를 당하고 말았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종교편향과 불교 핍박 속에서도 오로지 나라의 융창과 불법의 장래만을 발원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역사는 그를 요승(妖僧)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보우 스님의 종교편향에 따른 희생을 국제불교학회에 알리고 싶었다. 이번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인도학불교학회에서 보우 스님의 순교정신과 호법정신을 발표하기 위해 준비하다가 가슴을 울리는 시 한편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이글은 『나암잡저(懶庵雜著)』의 적은 스님에게 주는 법어(「示小師法語」, 韓佛全, 7, 577, 下)에서 나오는 시이다.

비유컨대 복과 덕이 있는 사람은
(비여복덕자 比如福德者)
조약돌을 잡아도 조약돌이 금으로 변하고
(집력력변금 執礫礫變金)
빈궁하여 복이 없는 아이는
(빈궁무복아 貧窮無福兒)
금을 만나도 금이 조약돌로 변한다
(우금금변력 遇金金變礫)
조약돌은 금이 아닌데도 금이 생기고
(력비금금생 礫非金金生)
금은 조약돌이 아니지만 조약돌로 나타난다
(금비력력현 金非礫礫現)
금이 생기는 것도 이 마음에서 생기고
(금생시심생 金生是心生)
조약돌로 나타나는 것도 이 마음에서 나타난다
(력현시심현 礫現是心現)

이와 같이 복과 덕이 있는 사람은 돌을 잡아도 황금이 되고 행복이 된다. 만약 이러한 사람이 권력을 잡고 천하를 다스린다면 천하는 편안하고 나라는 부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박복한 사람은 황금을 얻어도 그것이 돌보다도 가치 없이 되고, 재앙이 되고 만다. 만약 한 나라의 지도자가 박복하고 편협하면 그 나라 국민에게는 고통이 따르며, 국론은 분열되고 갈등만 고조될 것이다.

그런데 보우 스님은 이 복과 덕은 마음에서 생긴다고 하였다.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그것이 복이 되기도 하고, 덕이 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재앙이 되기도 한다. 아마도 이와 같은 시를 남긴 것은 당시 유교편향주의적인 종교차별의 조선사회의 유생들을 꾸짖은 것이며, 오늘날 우리사회의 편협된 사고방식에 의해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들이 교훈으로 삼아야 할 가르침이다.

보광 스님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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