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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근현대 불교사]53.민중불교운동의 전개

기자명 법보신문

사회민주화-종단개혁 외쳤던 불자들의 사자후

 
정토구현전국승가회의 수련회 기념사진. 민중불교운동연합회를 계승한 단체로 221면의 승려가 참여했다.

‘76년 대불련 개최한 화랑대회가 효시…86년 해인사 승려대회로 승화
‘민중의 고통 해방 노력’은 긍정적…불교 교리의 맑시즘 접목은 한계

1980년대 우리 사회는 군부 독재 정치에 맞서 민주화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노동자들 가운데는 거리에서 분신으로, 노동 현장에서는 연좌 농성으로, 판자촌의 철거민들은 철거 반대 투쟁으로 독재 정권에 항거하였다.
군사 독재 정권은 이들을 사회를 혼란시키는 빨갱이로 몰아 구속하고, 고문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무고한 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다.

민주화의 봄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등장으로 좌절되었으며 지식인 층에서는 공산주의 이론인 마르크스의 학설이 공감대를 넓혀 가면서 확산되어 갔다. 대학생들은 노동 현장과 야학을 통하여 민중이 역사의 주체임을 강조하는 민중운동을 전개하였다. 불교계에도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민중불교운동이 태동하게 된다. 민중불교운동은 타성에 젖은 기성 교단을 비판하고 사회 구원을 위한 실천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 운동은 기성 교단의 비민주적인 사찰 재정운용과 종권을 둘러싼 문중 간의 파벌성, 끊임없이 발생하는 폭력사태, 권력에 대한 종속성 등을 비판하고 불교계의 개혁과 자주화, 민주화, 반독재를 지향하였다.

민중불교운동은 대체로 1980년대 초부터 전개되었다고 보지만 그 효시는 1976년 전남 송광사에서 개최된 전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가 개최한 화랑대회에서 회장이었던 전재성이 「민중불교론」을 제기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민중불교론」에서 “물질적 정신적인 고해에 허덕이는 중생은 정신적 고통을 물질적 정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중생과는 구별된다”고 하여 중생 일반과는 계급적으로 구분되는 민중을 설정하였다. 나아가서 진정한 보살행은 억압 당하고 있는 민중의 해방을 위해 노력하는 실천이라고 주장하면서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5가지를 제시하였다. 실천 방안의 골자는 민중불교운동의 영역을 확대하여 긴밀한 연대를 형성하여야 하며, 민중과 유리된 특권층과 결탁은 배제되어야 하고, 민중불교운동은 종교운동이기 때문에 정치운동과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재성의 문제 제기 이후 민중불교운동은 여익구·고은 등이 민중불교연구회를 조직하여 이념과 운동방법론에 대하여 논의를 확충시켜 나가지만 조직적인 체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교리적으로도 다듬어지지 않았다. 민중불교운동은 들불처럼 번져 가던 마르크스 이론을 수용하여, 소외된 계층이 있는 현장에서 현실을 개혁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였다.

 
1987년 2월 25일 민중불교운동연합회가 발행한 『민중불교』 창간호.

이 운동이 구체적인 활동으로 나타난 것은 1981년 초에 시작되어 그 해 10월 당국에 의해 불교 사회주의운동으로 규정되어 관련자 150여명이 연행되어 법우 스님, 최연·신상진 등 핵심 인물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받음으로 좌절되는 ‘사원화운동’이었다.
‘사원화운동’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 출신 최연이 새로운 불교운동을 모색하면서 “불교가 중생 교화의 본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사회와 민중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함께 엮어 젊은 불자들의 전열을 정비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제창한 운동이다. ‘여래사운동’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운동은 사원을 민중지향적 사회활동을 위한 근거지로 활용하고자 지역 사원과 포교당 등을 야학활동의 터전으로 확보하려는 진보 세력의 노력이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승려들의 민중불교운동은 1981년 7월 11일부터 16일까지 전국의 학인 승려들이 중앙승가대학에 모여 ‘전국청년승려육화(六和)대회’를 개최한 데서 본격화된다. 육화란 석존께서 공동생활을 하는 승가에서 모든 사람들이 존중해야 할 여섯가지 덕목을 말한다. 이 대회에서 소장 승려들은 현대 사회에서 불교 사상과 승려들의 역할을 검토하고 불교계 개혁을 위한 방향을 모색하였다.

소장 승려들은 1983년 7월 17일 범어사에서 전국청년불교도연합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에서는 출가자와 재가자를 분리하여 전개하였던 불교개혁운동이 4부 대중이 참여하는 형태로 전개된다. 이 대회는 출가 승려와 재가 신도들이 화합하여 하나의 목표인 불교계 개혁을 선도할 주체적인 역량 확보를 지향하였다. 이러한 발전적인 방향 모색은 1983년 신흥사 승려 살인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교단의 비상사태를 수습하는데 나타난다. 신흥사 사건은 1983년 8월 6일 설악산 신흥사 신임 주지의 부임 과정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하여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태를 말한다.

이 사태가 발생하자 청년불교도연합회는 개운사에서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종단의 자율정화와 총무원장의 사퇴, 종회 해산을 촉구하였다. 이 사태는 언론에 대서특필되었고, 황진경 총무원장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으며, 종회는 해산되고 모든 권한을 원로회의에 위임하는 비상종단 체제로 전환된다.

이처럼 진보적인 지식인과 소장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불교계의 개혁을 주장하던 민중불교운동은 1985년 5월 14일 민중불교운동연합(민불련)이 창립되면서 새로운 계기를 맞는다. 출가와 재가를 망라하여 모두 180여명이 발기위원으로 참석한 민불련은 창립총회부터 불순단체로 지목되어 105명이 연행되는 참극을 겪으면서 출범한다. 이후 민불련은 기관지로 『민중불교』를, 회지로 「민중법당」을 발행하면서 불교권 내의 사회변혁운동을 하나로 묶어 내면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한다.

그러나 민불련의 활동은 핵심인물들이 1986년 5월 인천사태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구속되거나 수배됨으로써 퇴조하게 된다. 5·3인천 사태는 재야 및 학생 운동권 세력이 국민헌법제정과 헌법제정민중회의 소집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임으로써 319명이 연행되었고 129명이 구속된 사건을 말한다.

민불련의 민중불교운동은 1986년 6월 전국 승려 221명이 참가하는 ‘정토구현전국승가회’가 창립됨으로써 그 맥이 계승된다. ‘정토구현전국승가회’는 1986년 초에 14명의 소장 승려들이 개헌 서명에 참여하고, 민주화를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함으로써 불교계의 민주화운동을 선도하였다. 1980년대 민중불교운동의 최대 성과는 1986년 9월 7일 해인사에서 2천여명의 승려가 참석하여 개최한 전국승려대회에서 나타난다. 이 대회에서는 10·27법난 진상규명과 불교재산관리법의 철폐, 부천서성고문사건 진상규명 등 불교계와 주요한 사회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촉구하였다. 이 대회에 참석한 서의현 총무원장은 “호국불교의 개념을 특정 정권의 비호가 아닌 국민을 위한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밝혔다. 9·7해인사승려대회는 불교계가 관권의 예속에서 탈피하여 자주화와 민주화를 선언하고 사부 대중들에게 불교계의 민주화가 사회민주화와 직결된다는 점을 천명함으로써 민중불교운동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1980년대의 시대적인 흐름인 민주화를 실현하려는 국민들의 뜨거운 요구는 역사 흐름의 큰 물결인 민중들의 현실 참여의식을 고양시키는 민중운동으로 나타났다. 불교계도 이러한 시대적인 요청에 따라 민중불교운동을 전개한다. 그 전위에는 대불련과 같은 청년 학생들이 담당하였고, 소장 승려들이 합세함으로써 출가자와 재가자들의 연합세력이 형성됨으로써 폭이 넓어졌다. 이들은 기성교단의 무기력함과 종단 운영에 있어 관권에 예속된 행태를 비판하고 불교계의 자주화와 민주화를 촉구하였다. 이들의 현실 참여는 야학운동과 개헌지지 서명, 노동운동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러한 민중불교운동의 한계점은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지 못하였다는 점과 이론적인 측면에서 불교의 교리를 맑시즘에 접목시키는 오류를 범하였다는 점 등이 지적된다. 이들이 정의하는 민중은 소외되고, 억압된 계층이라고 한다.

불교의 교리 가운데 중요한 개념인 삼법인의 제법무아는 자타의 구별이 없다. 불교 교리는 특정 계층의 이해에 국한된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보편적이다. 맑시즘이 불교 교리를 해석하는 한 흐름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불교 교리는 맑시즘에 예속되기에는 너무도 심오하고, 방대하다. 민중불교운동은 민중들이 불교의 교리를 자각적으로 이해한 바탕위에서 전개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설사 이러한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불교계가 현실에서 고통받는 민중을 인식하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하고, 해방시키려는 노력은 긍정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정각을 이룬 도인들이 아니고, 시련에 고통스러워하는 범부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고통을 덜어 주려는 노력은 과소평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순석(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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