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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기자명 법보신문

[논설위원 칼럼]이기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안톤 슈낙의 산문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은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한다. 왜 아이들이 울까? 현실에 대한 욕구불만 때문이리라. 20세기의 어떤 구루는 슬픔이 바닥모를 깊고 아름다운 검은 꽃이라고 했다. 슬픔의 형이상학이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어린애들의 울음에 그런 형이상학의 아름다움이 있을까? 없으리라 생각한다. 단지 현실에 대한 욕구불만 때문에 애들이 울어댈 것이다. 최근 이명박 정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교 비하운동은 욕구불만에 쌓인 철없는 애들이 울어대는 것처럼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니 슬프게 하기보다 우리로 하여금 연민을 느끼게 한다.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 앞에 죄인이고 오직 예수를 향한 믿음만이 인간이 구원받고 하느님의 나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의 교리이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는 기독교인이 아닌 모든 사람들은 구제 불능한 모멸의 대상으로 비칠 것임에 틀림없다. 지독한 아만(我慢)이다. 그런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갈 수 있을까? 그 하느님의 나라에서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나와 나아닌 네가 분리된 의식의 상태에서 인간은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다. 모든 인간의 고통은 너와 분리된 내가 실재한다는 미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모든 고통이 사라진 열반은 불이(不二)의 세계이다. 거기에는 삶도 죽음도, 더러움도 깨끗함도, 늘어남도 줄음도, 기독교도 기독교 아님도 없이 모든 것이 비어있다.

40년이 넘도록 서울에서 살았지만 불과 몇 년 전에야 봉은사에 가보고 놀랬다. 서울 강남의 도심에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사찰이 있었던가? 서울에 오는 외국인들에게 우리가 자랑스럽게 보여줄 만한 사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 정권이 발간한 서울 안내지도에 봉은사를 누락하고, 근처의 보잘 것 없는 교회들은 등재하다니 말이 되는 말인가? 참으로 유치한 짓들이다. 또 촛불시위의 시국사범을 색출하겠다고 조계종 총무원장의 차량을 검색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짓들인가? 말할 수 없는 수모를 불교계가 당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다 우리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관음경에 집금강신으로 제도할 중생이라면 관음보살이 그들을 집금강신으로 제도한다고 설했다. 필요한 경우에는 금강저(金剛杵)로 위협해서라도 난포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자비라는 뜻이다. 지난 8월 27일의 범불교대회는 이 정권에서 자행되는 불교 비하의 횡포에 대한 당연한 대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범불교대회가 추락한 불교의 위상을 드높이는 유일한 길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금년 봄에 친구들과 어느 사찰에 들렀다가 탈락한 동국대 로스쿨 재선정 추진을 위하여 조계종단에서 벌이는 불자들의 서명운동을 보았다. 동반한 친구가 나에게 신정아 사건에 연루된 영배 스님이 아직도 동국대 이사장으로 재직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범법자가 이사장인 대학이 무슨 염치로 로스쿨을 신청하느냐고 웃었다. 세인의 웃음거리라는 말이다. 이것이 우리 불교인들을 진정으로 슬프게 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불교계를 바라보는 국민의 냉엄한 시각을 깨달아야 한다.

기독교의 장로가 대통령인 현 정권의 불교에 대한 핍박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불교에 대한 국민의 경멸이다. 불교계가 정화되지 않고서는 우리가 국민의 존경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없다. 불교가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진정한 종교로 거듭날 때 우리가 받는 이러한 수모들이 사라질 것이다. 8.27범불교대회보다 우리가 더 맹렬하게 더 집요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 불교계의 정화운동이 아닐까?

이기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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