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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 논쟁보다 노후복지가 우선

기자명 법보신문

[논설위원 칼럼]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불자라면 하나씩 갖고 있을 염주는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다. 재료에 따라 그 이름을 모두 달리 하니 보리수염주부터 율무염주, 수정염주, 목환자염주, 산호염주 등 그 종류만도 수십여 가지에 이른다. 일반 불자들은 대부분 보리수 열매를 꿰어 만든 염주를 선호하지만 율무염주를 선호하는 분들도 꽤 많다. 아마도 율무염주에 담긴 애틋한 정서 때문일 것이다.

율무씨앗은 자생력이 강해 우리나라 산간 어디에서도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다. 옛부터 우리 선조들은 산길을 걷다 율무열매가 무성한 곳을 지나면 합장을 올렸다. 어느 이름 모를 스님이 생을 다할 때 갖고 있던 율무염주가 땅에 떨어져 다시 싹을 틔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가진 것에 만족하고, 불필요한 것은 취하지 않는’ 철저한 무소유 삶을 살다간 법명 모를 스님에게 불자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예를 올렸던 것이다.
최근 본지가 조계종을 대상으로 불교미래연구소와 공동 설문 조사를 해 스님들이 의식주 해결조차 전전긍긍 하고 있다는 결과를 보도했다. 의식주 다음으로는 생활비와 치료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몇 해 전, 본지에서 ‘사설사암’소유 문제를 기획해 상세히 보도한 바 있다. 청빈한 삶의 모범을 보여야할 수행자가 어찌 사설사암을 소유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고, 그 보도의 초점은 사설사암을 비롯한 사유재산 소유에 대한 문제였다. 보도 후 재가 보다는 승가에서 많은 전화가 쇄도했다. 대부분 일명 ‘호화판 사설사암’도 버젓이 있는 현실에 대응해 잘 다뤘다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반면 몇 통에 불과한 전화였지만 큰 울림으로 다가 온 지적도 있었다. 보도에 대한 이의 보다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반문이었다. 그 스님들은 작은 사암 하나 갖고 있었을 뿐 속가에서 얻어 온 돈마저 불사에 쓰고 있는 분들이었는데 이렇게 물어왔다.

“지금은 괜찮다. 그러나 늙어서 병이 나고, 오갈 데 없을 때 어찌 하는가. 종단과 본사를 비롯한 사찰에서 병원 치료비는 둘째 치고 방 하나라도 내 줄 수 있는가!”
서울 도심 속 작은 사찰에 선방을 올곧이 이끌고 있는 수좌 한 분이 계시다. 그 스님은 해제철이 되면 만행길에 오른 수행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최소 한 달 이상은 꼼짝 하지 않는다. 선방 수좌들 사이에 이미 정평이 나 있던 수행승이었기에 사설사암과 사유재산 소유에 대한 문제를 꺼내 보았다. 스님은 승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충격적인 일들을 소상히 들려주었다.

초기 암에 걸린 비구니 스님 한 분은 치료비가 없어 승가를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 중에 있다고 한다. 승가에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법이 없는 듯하니 환속해 속가의 힘을 빌어서라도 치료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승가를 떠나고 싶은 마음은 없기에 고민 중에 있다고 한다. 수좌 스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중에는 이보다 더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차마 지면에 담을 수가 없다. 다만, 그 비구니 스님의 이야기는 그래도 나은 편이라는 점만 전하고 싶다.

전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 ‘승려노후복지’를 위한 제도개선에 남다른 노력을 보였다. 그러나 법장 스님이 뜻하지 않게 입적함에 따라 빛을 발하지 못했다. 현 종단도 개인소유 재산 문제와 함께 승려노후복지에 대한 심각성을 간파한 듯하다. 하지만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지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누구에게 물어도 사설사암 확충은 지양되어야 하며 사유재산 소유는 더더욱 안 될 말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노후복지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당연한 말들은 자칫 하나마나한 소리로만 남겨질 공산이 크다. 구체적이고도 확실한 노후복지 제도를 하루빨리 대중에 내보이고 시행해야 할 것이다. 혹여, 그 비구니 스님은 산길에 오르는 중에 생을 다하지는 않았는지.... 손에 든 율무염주를 돌리면서도 번뇌 하나만 더 늘어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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