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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우자

기자명 법보신문

[논설위원 칼럼]보광 스님 동국대 교수

가을로 접어들면서 나무들은 겨울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싱싱하던 잎사귀는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물들면서 이별할 준비를 하고, 한 겨울의 혹독함을 이겨내기 위해 군살을 빼고 있다.
이 계절이 지나 겨울이 오면 온 대지는 꽁꽁 얼어붙는 영하의 날씨가 된다. 그러나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미리부터 준비를 한다. 생명만 부지할 최소한의 것 이외에는 모두 정리한다. 이는 내년 봄에 새로운 삶을 위해서다. 초봄이 되면 길섶의 민들레는 얼어붙었던 땅 속에서 새롭게 삶을 시작한다. 불과 몇 센티도 되지 않은 연약한 뿌리가 얼어 죽지 않고 잎과 꽃을 피운다.
하잘 것 없는 민들레도 추운 겨울을 살아남기 위해 무소유로 돌아가 동면한다.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깨달아 자연에 순응하면서 생명의 줄을 놓지 않는다. 미물도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버티는 것이 생명의 신비함이다.
그런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지키지 못해 목숨을 놓아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얼마 전에는 국민의 스타로 불리던 연예인들이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버리고 말았다. 한 사람은 돈 때문에 이겨내지 못했고, 한 사람은 사람에 시달려 세상을 떠났다. 그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으며, 오죽했으면 죽음을 선택했겠는가라고 말하겠지만, 이는 참으로 우리 사회의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처님께서 가장 금기시 하신 것이 살생이다. 그 중에서도 자살은 살생 중의 살생이다. 남의 목숨도 중하지만, 자신의 목숨은 더욱 중하다. 자신의 생명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나의 것인 동시에 가족의 것이며, 사회와 국가와 인류의 것이다. 이 세상에 올 때 자신의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듯이 갈 때도 자신이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생명은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금생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다겁 생의 윤회를 거쳐 오면서 이어진 것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가지고 가야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그 큰 윤회의 업보 속에 연결 지어진 한 고리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한 해 동안 1만 3000여명이 자살을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숫자라면 시골의 작은 읍 단위의 인구이다. 만약 전쟁이 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면, 온 세계가 경악할 일이다.
그런데 현실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믿기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이 순간을 벗어난다고 그 고뇌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로 인해 다음 생에 받아야 할 업보는 얼마나 크며, 자신의 경솔한 선택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입어야할 상처는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 어머니 경솔한 행동으로 평생을 고아로 살아야할 아이들을 생각해 보았는가? 딸을 비명횡사로 보낸 어머니의 가슴속은 얼마나 타들어 가겠는가 말이다.
근래에 자살한 사람들 가운데는 대부분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살 앞에는 종교도 소용이 없었단 말인가?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과연 종교의 성직자들은 무엇을 가르쳤는지 반성해 보아야할 것이다. 만약 자신의 신자들에게 생명의 존귀함을 가르치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 사찰이나 교회는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설사 법적인 책임은 없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도의적인 책임은 져야할 것이다.
수많은 종교단체에서 사회봉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물질적인 구제 역할만 하지 정작 인간의 가장 고통스러운 삶의 고뇌는 어루만져 주지 못하고 있다. 성직자들이 신자들의 내면의 세계에까지 들어가 그들의 고통과 번뇌를 해결해 주려는 노력을 하고 평소에 생명의 존귀함을 깨우쳐 준다면 자살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상황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성직자들의 책무 중 하나는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우는 일이 아닐까?

보광 스님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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