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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구법의 원력

기자명 법보신문

일선 스님 거금도 금천선원장

뒷산 봉우리에 벌써 단풍이 내려오고 있다. 예년에 비하여 빠른 것은 아마도 극심한 가뭄 때문인 것 같다. 도량에는 타는 목마름 속에서도 국화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고절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밭에는 마을 사람들이 메마른 땅에 물을 뿌리며 뙤약볕 아래서 양파를 심는 모습이 무척 힘겨워 보인다. 지혜로운 사람과 자연은 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제 빛깔과 향기를 포기하지 않고 시절인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참으로 신비하고 경이로운 모습이다.

혜초 스님은 신라 성덕왕 3년(704년) 에 출생하여 16살 때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인도의 스님인 금강지에게 밀교를 배우고 그의 권유로 구법여행을 떠났다. 인도의 거친 자연과 낯선 사람들 속에서 목숨을 내건 험한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남아시아 넓은 사막을 횡단하고 히말라야 높은 봉우리를 보며 지은 시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최고의 기행문이라고 불리는 좬왕오천축국전좭에서는 진리를 향한 구법의 원력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생각만 해도 온몸에 전율이 흐르게 한다. 이십여 년 전 두 철 동안 혼자 인도를 만행하고 히말라야 토롱페스를 넘으면서 겪었던 외로움과 함께 죽음의 고비를 넘었던 기억이 겹쳐져서 참으로 눈물이 흐를 것만 같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존재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사고(四苦)와 팔고(八苦)의 고통에 놓이게 되고 성주괴공이라는 자연 환경에 처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오늘도 발버둥치며 살아간다. 아무리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희망이 있는 사람은 죽음의 공포를 잠시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상살귀(無常殺鬼)는 시시각각으로 사람의 생명을 조여와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바깥에서 구하여 얻어진 것들은 보배가 아니며 근본을 요달하지 않으면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몸이 죽으면 따라서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살생의 업을 짓게 되는데 참으로 무서운 죄업인줄 모르니 안타깝기만 하다. 설사 삶의 고통이 죽음의 공포를 망각할 정도로 닥쳐오더라도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려우며 정법 만나기는 참으로 어려우니 오히려 여기에서 크게 발심하는 계기를 삼아서 수행문으로 들어서는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생사란 한 생각 일어나고 사라짐이지 결코 몸이 죽는 단멸의 허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마 스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구하지 부처를 구하지 않고 마음을 다스릴지언정 몸을 다스리지 않는다고 했다.

한편 구도자들은 죽음의 공포가 두려워서 구법의 길을 떠나게 되는데 난행을 능행하여 끝내 생사대사를 해결하는 것은 굳은 신심과 원력 때문일 것이다. 내가 본래 부처라는 바른 신심을 갖추게 되면 지금 처해있는 범부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에 태산을 일시에 무너뜨리고 바닷물을 한입에 삼켜 버리는 대분심과 대의단이 형성되어 은산철벽인 화두를 타파하고 생사대사를 해결하게 된다. 하지만 발심을 하지 않고 정견을 갖추지 못하면 길을 잃고 수행을 포기하게 되는데 이것은 내가 본래 부처라는 신심이 약하고 원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다를 건너갈 때 배를 의지하면 아무리 크고 무거운 것도 쉽게 건널 수 있듯이 존재의 원리는 연기이며 중도여서 내가 본래 부처라는 바른 믿음으로 생사대해를 능히 건너가게 된다.

산비탈에는 한 무더기 쑥부쟁이가 끈질긴 생명력으로 가을하늘과 바다를 만나 동색을 이루고 있다.

일선 스님 거금도 금천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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