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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 깊은 책 읽기]고도는 내일 온대요

기자명 법보신문

『고도를 기다리며』사뮈엘 베케트 지음 / 민음사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은 블라디미르, 우리의 주인공입니다. 그 블라디미르 옆에서 함께 고도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에스트라공은 고도의 존재에 관심도 없지만 그것 말고는 뭐 달리 할 일이 없는 터라 그저 함께 기다려주는 또 하나의 주인공입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대화는 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란 것이 도대체 아무런 의미도 없을뿐더러, 전혀 앞뒤 맞지 않는 말을 둘은 주섬거릴 뿐입니다. 그러다 그들은 갑자기 자기들의 대화에 맥이 풀려버립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이제 가자.”
하지만 일어서지 않습니다.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쓸 데 없는 대화는 왜 나누었고, 떠나지도 않을 거면서 ‘가자’는 말은 왜 했냐고 따지니 블라디미르의 볼품없는 상대자 에스트라공이 대답합니다.
“우린 늘 이렇게 뭔가를 찾아내는 거야. 그래서 살아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구나.”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시간이 가지 않고, 그거라도 해야 우리가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이 버둥대며 살아가는 모습들은 마치 이 두 사람의 무의미한 몸짓이나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물어댑니다.
‘나 잘했지요?’
‘이만하면 살아갈 가치가 있지요?’
‘내가 필요한 줄 이제 알았지요?’
우리는 언제까지 그리고 누구에게 이렇게 우리가 살아 있음을 확인해야 할까요? 그건 바로 ‘고도가 올 때까지’라고 블라디미르는 말합니다. 아무튼 사람들은 뭔지 잘 모르는 ‘고도’가 오면 행복해질 것이라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고도가 오기는 할까요? 온답니다.
언제요? 내일이요.
자, 그렇다면 그 내일은 10월14일의 다음 날인 10월15일인가요,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올지도 오지 않을지도 모를 그 어떤 미지의 날일까요?
1969년의 노벨문학상은 아일랜드인인 사뮈엘 베케트에게 돌아갔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처음 출간되었을 때의 썰렁한 반응과는 달리 1년 뒤 무대에 올렸을 때는 세계연극계에 충격에 가까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으며, 마침내 베케트에게 노벨문학상이라는 영광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베케트는 노벨문학상 수상과 관련한 그 어떤 인터뷰도 하지 않았고 시상식에조차 불참하였습니다. 자의로 혹은 타의에 의해 노벨상을 거부한 사람들도 있지만 이렇게 무응답으로 일관한 수상자도 보기 드뭅니다.

10월9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발표가 날 때마다 휴대폰을 꺼놓고 일체의 외부접촉을 피해야 하는 경기도 안성의 고은 시인에게 괜히 미안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일부는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날이 고도가 오신 날인 줄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베케트가 시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고도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고 사는 이런 사람들을 향한 극단적인 조롱처럼 보입니다…. 고도는 내일 온다고 합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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