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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주년]법보신문이 만난 생명사상가 김지하 시인

기자명 법보신문

개벽은 혁명 대신 우주 여는 것
동서양 안을때 불교가 미래 비전

생명·생태·녹색운동 모두가 ‘불살생 운동’

서구 금융위기 개신교 자본주의 멸망…영적고갈 해답 불교서 찾아
지금이 바로 화엄시대…불교, 자기 개혁으로 문명변동기 준비해야

지난 8월 27일 열린 범불교도대회는 한국불교역사상, 아니 세계불교역사상 초유의 정치집회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열정적이면서도 자제력을 잃지 않았던 범불교도대회를 통해 잠재된 역량의 일단을 보여준 불교계는 평온을 유지하며 정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그런데 범불교도대회 이후 불교계에서는 뜻밖의(?) 인물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반체제 저항시인으로 불리는 김지하 시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정적이면서도 차분하게 진행된 범불교도대회를 지켜본 그는 그 소회를 ‘가만히 좋아하는-헌법파괴·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대회를 보고-’라는 제목을 붙여 장문의 글로 풀어냈고, 그 원고가 「법보신문」지면을 통해 7회에 걸쳐 연재되면서 불교계 안팎에 회자됐기 때문이다.

그는 기고문에서 “최근 이명박 정부의 불교에 대한 종교차별은 헌법파괴수준에까지 이르고 있고, 여기에 대한 범불교적 비판은 평상의 수위를 이미 훨씬 넘어서 있다”고 질타했다. 그리고 “불교 측이 보여주고 있는 이 ‘가만히 좋아하는(자제된 열정)’ 양식의 반공(反攻)에 크게 감사해야 한다”고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시인이자 생명사상가인 김지하. 하지만 그는 아직도 세인들에게 유신 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의 중심이었고, 도피와 유랑 그리고 투옥과 고문 등 형극의 길을 걸어온 작가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그의 글은 MB정부에 대한 비판에 머물지 않았다. 생명·생태 문제를 비롯해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문화와 경제·사회 등 전반의 문제를 담론으로 삼아 이 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불고 있는 인류문명사의 대변동을 예고했다. 그리고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문명사의 대변동 시기를 맞아 그 해답이 불교적 사유에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류문명사의 대변동을 예고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고, 그 답이 불교적 사유에 있다는 말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그가 들고 나온 ‘화엄개벽’의 정체는 무엇이며, 그것이 불교와 어떻게 소통되고 있는지 직접 듣기 위해 김지하 시인을 그의 일산 자택에서 만났다. 반공이데올로기가 국가 운영체제의 기반이던 시절에 서슬 퍼런 유신 독재에 저항하며 맞섰던 젊은 시인은 종심(從心)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그 눈빛은 여전히 저항시인 김지하의 면목을 보여주고 있었다.

▷기고하신 글 내용의 폭이 넓고 방대하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방대하다고 해도 『화엄경』만큼이야 하겠습니까. 나도 책을 많이 읽은 편인데, 화엄경에는 이 세상에 안 들어가는 게 없습니다. 물론 글을 보고 조금 복잡하게 생각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기고에서는 정부와의 관계보다는 동서양간 관계, 생명평화와 생태학 그리고 디지털 등 세 갈래를 이야기했습니다. 또 하나는 경제이야기인데 최근의 금융위기가 앞으로 아시아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불교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보자는 것인데, 지금 싸우고 있는 역행보살(MB정부)은 놔 두고 내가 보기에는 화엄사상과 선의 양 측면에서 동서양을 다 안아들일 수 있으면 미래세계 전체에 대한 비전이 될 것 같습니다. 내 느낌입니다.”

▷전제조건이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것이 현실적으로 되는데는 동학으로부터 시작된 개벽사상이 접목되어야 합니다. 동학의 후천개벽사상이 집단적 선(禪)이든 개인적 선이든 참선의 형태로 습합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화엄이 동식물은 물론 티끌 하나에서 물 한 방울까지 중생이라는 것을 다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문명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서양의 입장은 어떤가요.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화엄경과 같은 큰 스코프를 가져도 될까말까 한데 서양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꾸 이쪽에 뭐 대안이 없는가 고개를 돌리고 있지요. 그러다 보니까 불교가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무엇을 얻어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영적인 고갈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유럽에 가톨릭 신자보다 불교신자가 많아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불교가 어떤 문제에 어떻게 답을 줘야 한다고 보십니까.
“하나는 디지털로 대표되는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입니다. 일종의 문명이겠죠. 그것이 신세대하고도 연결이 되고 또 촛불하고도 연계가 됩니다. 그래서 거기에 새로운 더 높은 가치의 답을 불교가 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본주의 문명 뿐만아니라 전세계 문명 자체가 아주 빠르게 서쪽에서 아시아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새로운 시장 즉 세계의 문명이 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돈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따라가고 앞서야 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그 마음이 불교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교가 우주적 비전과 가치를 보여서 답을 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영적고갈과 생명관계에 대한 정확한 지침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후천개벽기의 생명사상이 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여기에 불교와 개벽쟁이들이 함께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벽이라는 것은 혁명 대신 우주를 여는 겁니다. 마음을 여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화엄개벽’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불교를 본다고 했는데, 불교가 답을 내놓기 위해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서양은 객관적 과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객관과 영성을 적당히 얼버무려서 왔기 때문에 인생의 길잡이가 제대로 없습니다. 그런데 불교를 찾으면서 갖는 불만이 있지요. 하나는 객관적으로 생태·생명운동이나 기운문제 같은 것에 대해 철저한 대답이 약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여성문제입니다. 불교가 아주 완벽한 것 같지만 여성문제에 한계가 있습니다. 고대 경전으로 보면 여성을 낮춰서 보고 있어요. 여성성이라는 것이 여성의 육체에서 아이 낳는 것까지 다 포함하는데, 이런 것들을 무가치하게 볼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이런 쪽에 중심을 두고 정신적인 해방의 길을 새로 찾을 것이냐에 대해서 전통불교가 답을 줘야 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요.
“중생이 부처라고 했으면 진짜 중생들에 대한 고민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무문관에서 몸을 내던지는 용감한 사람들의 세계가 아니라, 진짜 중생들은 약자의 측면에 서 있는 여자 그리고 아랫것들 아니냐는 거지요. 저 광장의 촛불들도 마찬가지이지요. 사실 동서양의 고전을 보면 내우외환이 있을 때마다 그걸 막아낸 건 장년 남성이고, 뒷받침한 세력은 힘센 청년 남자들입니다. 그래서 부녀자와 아이들은 항상 걱정의 대상이었습니다. 즉 보호대상자가 되지요. 그 대상자들에게는 사회적 권력이나 중심성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 촛불을 보세요. 그 피보호의 주체들이 정치 주체가 된 것입니다. 임금이 하는 정치를 감히 넘겨다봤다는 말입니다. 이 현상을 불교가 어떻게 볼 것이냐는 겁니다.”

▷스스로 동학당이라고 하면서도 불교에서 인류문명 변동기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하시는데요. 불교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감옥에서 불교를 만났습니다. 불교와의 관계는 감옥에서 나올 때 아사이신문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 정확한 것 같습니다. 그때 기자가 지금 사상의 현주소가 어디냐고 물었는데, 내가 답하길 내 사상은 눈인데 눈동자는 동학이고 망막은 불교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 내 운명을 압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화엄개벽이란 말이 절대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민중불교가 활발할 때 불교쪽에서 일을 같이 하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공부를 더 할 때라서 마다했고, 지금은 상황이 또 다르기 때문에 불교와 손을 잡는 것입니다.”

▷지금 불교 쪽 인사들 중에서도 생명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생명·생태문제에 깊이 관심 갖는 이유가 뭡니까.
“지구 전체가 지금 변동하고 있습니다. 얼른 보면 조용한데, 굉장히 요동을 치고 있어요. 죽지 않는 생명체가 나타나고 있기도 합니다. 진화론자들은 생명종의 변화는 완성됐다고 하는데, 2년 전에 곤충의 겨드랑이에서 없어졌던 날개가 다시 돋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30여 종에서. 진화는 한 종 안에서 폐쇄되지 않습니다. 한 종 안에서 진화가 시작되면 순식간에 교류가 없는 저쪽에서도 진화가 시작됩니다. 그게 뇌 세포의 변화, 생명 자체의 변화입니다. 결국 인류사회에서도 재진화 현상이 일어날 것입니다.”

▷결국 영적인 문제로 이어진다는 말씀인가요. 재진화가 갖는 문명사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지금 미국이나 유럽의 금융위기는 구체적으로 개신교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망한 겁니다. 원래는 근면성과 정확성을 존중하는 자본주의였는데, 지금은 전부 주식이나 부동산에 넣어서 한꺼번에 먹으려고 합니다. 이것을 카지노 자본이라고 하는데, 한국도 지금 똑같습니다. 한국의 개신교 사람들도 똑같아요. 그러나 천천히 보면 생명계통의 인류문명은 모두 아시아로부터 발원했습니다. 지금 재진화는 문명사적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시아로. 그러나 불교가 초보적인 영적인 것만 갖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많은 자기개혁을 해야합니다. 많은 젊은 인재들을 양성해야 하고요. 외국의 철학개념이나 과학, 인문학, 예술 이러한 것을 보면서 불교가 너희들보다는 낫다고 이야기할 때가 아닙니다. 그건 (이미 그렇게 때문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 인간이 자기 생을 살아가면서 몸 안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참선이 집약해줘야 합니다. 참선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불교와 동학이 결합돼야 한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지금의 한국불교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긍정적으로 봅니다. 다만 지금까지 불교의 어필 포인트는 표면적인 것에만 집중돼 있었습니다. 불교의 어떤 부분을 현대에 맞게 끌어내 강조할 것인지 찾아야 합니다. 나는 그것이 여성성이라고 봅니다. 화엄경은 월인천강입니다. 천개의 강에 달이 비추는 것이지요.”

▷화엄과 후천개벽의 상관성은 무엇입니까.
“현대는 개체중심의 융합입니다. 촛불은 인터넷을 하는 친구들로부터 시작됐고, 이들은 저마다 홍길동입니다. 거기에 가서 김지하가 이리로 가자고 하면 ‘너나 가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대가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지금까지 공동체, 국가, 민족으로 묶어놓았던 것에서 해방되기 시작하면서 개체성이 튀어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진화론도 바뀔 것입니다. 종 전체 중심의 진화가 아니라 개체가 먼저 나올 겁니다. 천개의 다른 개체들이 자기 안에 있는 하나의 큰 우주적 달을 자기 스타일로 자기 조직화하는 게 현대적 진화입니다. 바로 촛불들이 그렇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이 사는 스타일이 우리시대와는 다릅니다. 그게 월인천강입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화엄시대입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자신을 가져야 합니다. 후천개벽 모양으로 개혁을 한번 해야 합니다. 불교는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끌어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불교가 갖는 원래의 큰 잠재력을 누가 현실에 맞게 뽑아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불교개혁을 잠깐 언급했는데, 불교개혁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
“개혁방향은 돈입니다. 스님들이 외제 승용차 두 세대 끌고 다니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잡으려 하지 말고, 잠재적 역량을 현대적 방향으로 끄집어 낼 수 있는 젊은 인재들을 많이 양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자들과 아랫사람들에게 반말하는 것부터 고쳐야 할겁니다. 내가 가톨릭 그만둔 이유 중 하나가 젊은 신부들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반말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인격적인 바탕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교리 자체가 그렇습니다. 그럼 불교는 교리의 어디에 그런 근거가 있고, 어디에 귀천구별이 있습니까. 어떤 게 귀하고 어떤 게 천하고, 저 사람은 가르쳐야 할 대상이지 나와 동격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판단의 기초에 어떤 교리상의 문제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이 문제 해결 안 하면 불교가 아무리 떠들어봐야 위선의 향연밖에 안됩니다. 개인의 버릇이 아니라 그렇게 배운 것입니다. 하지만 동학의 첫째 원칙은 모심입니다. 동학이 지금 별 볼일 없지만, 불교와 동학이 손을 잡으면 마치 눈동자와 망막의 관계처럼 제대로 이뤄낼 수 있습니다.”

▷불교와 동학이 손잡는다는 말씀에 공감하는 스님들도 있나요.
“글쎄요. 아직 목소리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불교의 잠재된 것을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으로 열고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감옥에서 나와서 생명평화운동을 말했을 때는 생명교 교주라고 욕을 먹었지만, 지금은 욕하던 그들이 생명·생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탁탁 치고 나오면, 마치 화두를 치고 나오듯이 나오면 전 교단이 참선상태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동학과 같은 민족종교와 손을 잡는 것은 마치 대웅전 뒤에 삼성각이나 칠성각이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학의 어떤 사상이 화엄선에서 이어진 것이라고 보는 겁니까.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가 후천개벽인데, 만사지가 대화합입니다. 만사는 수지 다입니다. 수가 많다는 것이죠. 이 수가 많은 게 바로 화엄입니다. 하나 하나의 모든 수에 내면의 세계, 영성의 해방, 오프닝을 꽃으로 비유해서 그 수많은 꽃으로 세상을 장엄한다는 것이 수지 다입니다. 이것은 비로자나불이 침묵과 미소로 개화를 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화엄을 각자 깨닫는다는 것이 동학에서의 모심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디지털이라는 것이 개체충심의 네트워킹 원리인데, 그게 화엄입니다. 그리고 생명·생태·녹색운동은 다 불살생운동입니다. 그런데 그 밑에는 영적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생명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위해 개혁을 하자는 것이고, 또한 개혁을 위해서는 도덕성이 높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사회의 종교화합, 어디까지 가능하겠습니까.
“동아시아에서 동서의 양 문명이 손을 잡아야 하는데, 그건 곧 불교와의 화해를 말합니다. 불교와 가톨릭은 이미 서로 고리를 걸었다고 봅니다. 저는 11월 3일 통영에서 개신교 목사들 초청으로 특강을 하는데 200명 이상이 모인 그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종교화해 문제를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또 다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할 기회가 있습니다. 저는 낙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스님들을 만나면 이제까지 싸운 것 보다 더 따뜻하게 기독교인들의 손을 잡아주라고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에게는 따뜻하게 대하고 날카로운 칼날은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논조가 불교 안에서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문명의 변동기를 맞이하는 사회적 변화를 위해서는 지도자들이 먼저 변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좌든 우든 중간이든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은 모럴헤저드 정도가 아니고 소위 생명 자체의 헤저드입니다. 해체입니다. 미친 소에 멜라민 정도가 아니라 이제 갈 때까지 갔습니다. 특히 자살자 문제, 대학생 자살자가 월 평균 30명입니다. 그 고생을 해서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이 한 달에 30명씩이나 자살을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민족은 본래 자살 안 하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생명을 끊습니다. 좌파고 우파고 간에 정신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가 자기개혁을 통해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반대로 지금 자만하면 그야말로 헤저드로 갑니다. 나는 범불교도대회를 보면서 불교가 전 세계적 멘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김지하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반체제 저항시인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생명사상가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1941년 2월 4일 전라남도 목포의 동학농민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났고 1959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4·19혁명에 참가한 뒤,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학생 대표로 활동하면서 학생운동에 앞장섰다. 1970년 『사상계』 5월호에 권력 상층부의 부정과 부패상을 판소리 가락으로 담아낸 담시 ‘오적’을 발표하면서 단숨에 박정희 군사 독재 시대의 ‘뜨거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후 저항시 발표 및 저항운동에 전념하면서 연행과 석방, 도피 생활을 거듭하던 중 1974년 4월 체포되어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1주일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1980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1984년 사면 복권되고 저작들도 해금되면서 민중사상에 독자적 해석을 더해 ‘생명사상’이라 이름하고 생명운동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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