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령의 여운 깊은 책 일기]불신지옥에 대처하는 법
[이미령의 여운 깊은 책 일기]불신지옥에 대처하는 법
  • 법보신문
  • 승인 2008.11.03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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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철학적인 하루』피에르 Y.부르딜 지음/사피엔티아

한가한 지하철 속에서 어린 소년과 엄마의 문답은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엄마, 저건 뭐야?”
꼬마는 지하철에 달려 있는 모든 사물의 이름을 물었고 엄마는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해주었습니다.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오자 꼬마의 질문은 점점 빨라졌고 엄마의 대답도 바빠졌습니다.

꼬마의 질문은 언제쯤 멈출까요?
어쩌면 어느 날 매우 불성실해지고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그만 좀 물어봐’라는 엄마의 대답을 듣게 되는 그 순간일 지도 모릅니다. 하긴, 뭐 그리 사무치게 궁금한 것도 아니었을 테니까요.

그렇게 질문하기를 멈춘 아이는 학교에 들어간 뒤 세상에서 벌어진 사실과 세상에서 펼쳐지는 이치에 대해 수업을 받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의 내용에다 ‘왜 꼭 이렇게 이해해야 하지요?’라거나 ‘이 내용이 사실이고 진실한가요?’라는 물음표를 달 수는 없습니다. 철저한 주입식 교육인지라 학교와 교사와 어른과 사회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여 아이는 어른이 되어갑니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더 이상 묻지 않게 됨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런데 15살짜리 프랑스 소년 필은 어느 봄날 아침에 갑자기 ‘왜 내가 꼭 필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하지?’라는 게 궁금해진 겁니다. 그동안은 너무나 당연했던 사실에 물음표를 붙이기 시작하자 갑자기 온 세상은 의문덩어리로 변해버렸습니다.

필은 불안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게 궁금하지 않은 친구들과 어른들은 어제와 다름없이 하루를 잘 살아가는데 필은 어쩌자고 이런 몹쓸 병에 걸려서 그동안 ‘사실’이고 ‘진리’라고 여겨왔던 것이 한 순간에 의심스러워졌단 말인지요.

‘쓸데없는 질문’을 던지는 필에게 학교 선생님들이 대응하는 방식은 참 흥미롭고 아름답습니다. 철학 선생님 칼벨은 그런 필을 바닷가로 데리고 나가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선생님은 필이 궁금해 하는 내용에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소년이 품게 된 물음표에 박수를 보냅니다. 물음표를 품는 것이 바로 ‘철학하는 일’이지, 어느 철학자가 뭐라고 말했는지를 책으로 익히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 다니면 지옥 간다는 친구의 협박을 받고 겁에 질려 돌아온 아이를 볼 때면 불자 엄마들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습니다. 사실 엄마들도 어떤 것이 내 아이를 불자로 만드는 길인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불교는 안 그래.’라고 맞서기보다는 ‘가보지도 않은 지옥에 사람들은 왜 겁을 먹을까? 한번 생각해보자’라고 아이에게 말해주는 것, 이것이 어쩌면 내 아이를 제대로 된 철학자, 제대로 된 불자로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이런 걸 궁금해 해도 괜찮은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칼벨 선생님은 정답이란 ‘궁금해 하는 자기 자신’이라고 일러주셨거든요.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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