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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마지막 한걸음까지

기자명 법보신문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고대 페르시아의 카즈윈 사람들은 손등이나 어깨, 혹은 신체의 어느 곳이건 푸른 잉크로 서로에게 문신을 새기며 행운을 비는 관습이 있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이발사를 찾아와서 용맹스런 사자를 어깨에 새겨 달라 했다. 이발사가 벌겋게 달군 바늘에 잉크를 묻혀 찌르기 시작하자 그는 아프다며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뭐하는 거요?”
“사자.”
“어디부터 새기는 것이오?”
“꼬리.”
남자는 꼬리는 필요 없으니 다른 곳부터 새기자 했다. 이발사가 다시 몇 바늘 찌르기도 전에 그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이번은 어디요?” “귀.” “귀가 없어도 사자는 용맹하오.”
다시 시작, 이번에도 남자는 참을 수가 없었다. “어디를 그리는 데 이리 아프오.” “배” “나는 배 없는 사자가 좋소.”
이발사가 곰곰이 생각하다 바늘을 놓으며 말했다.
“이것저것 다 빼면 무엇을 그리란 말이오. 그냥 가시오.”

대학 수능이 임박하자 뜸하던 발걸음들이 분주해졌다. 불교 용품점의 얘기로는 경기가 안 좋은 이유도 있겠지만 가을 접어들면서 부쩍 염주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평소에는 향 한 자루 피우지 않다가(閑時不燒香), 급하니 부처님 다리를 붙들고 늘어진다(急時抱佛脚)’는 말이 괜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누가 그 마음을 탓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라도 부처님을 찾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 절은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설악산 봉정암과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 전에 기도를 갔었는데, 올해는 가까운 소요산 자재암에 다녀오기로 신도들과 약속을 잡아놓고 있는 참이다. 생각해보면 그 두 곳의 기도 열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틀을 잡아야 다녀올 수 있는 봉정암은 이즈음이면 매일 2~3천명에 이르는 기도객들이 전국각지에서 몰려들러 서로가 서로에게 감동을 받는다. 헬기로 공수해야하는 각고의 불사로 수용능력은 많이 좋아졌지만 호사로울 수는 없다.

그래도 한나절을 꼬박 올라가야 하는 가파른 첩첩산중의 암자에 기도를 올리기 위한 정성이고 보면, 현장에 서 있다는 자체로 한 없이 행복해지는 곳이다.
팔공산은 또 어떤가. 연중 참배객이 끊이지 않는 우리나라 제일의 기도처로 산마루의 갓바위 부처님 전에 절을 올리고 둘러보면 사방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봉우리마다 기운을 주체 못해 터져 나오는 불길처럼 바위를 이고 있다.

불자들의 기도 성지임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돌계단과 산만한 시설물들로 신도들 보기가 민망하였는데, 작년에 가보니 주차장에서 상봉까지 말끔하게 계단과 주변 불사를 해 놓아서 무한 감사했었다. 사람이 이성으로만 살지는 않는다.

‘시련이 없이도 상처를 입는 게(便無風雪也殘)’ 우리네 인생이고 보면, 오히려 절박한 심정으로 갈구하는 마음에서 삶의 진실과 정감(情感)은 빛을 발한다.
그러나 고통 없이 아름다운 문신을 얻을 수 없다는 얘기. 입시생을 둔 부모들은 지금이라도 가까운 절에 다녀오시라.

누가 알겠는가,
누가 알겠는가!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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