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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입에 염불하라

기자명 법보신문

[논설위원 칼럼]보광 스님 동국대 교수

우리 속담에 “노는 입에 염불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찌 보면 염불을 폄하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염불은 할 일 없을 경우에나 하는 것처럼 보이며, 하다하다 할 일 없으면 염불이나 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 생각하면 쓸데없이 남을 흉보거나 험담하는 것보다 염불하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할 일없이 구업을 지어서 남을 괴롭히고 자신의 입을 더럽히는 것보다 염불하여 청정업을 닦으라는 것이다. 흔히들 할 일없이 남을 모략할 때 그 사람을 핀찬하여 “노는 입에 염불하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을 처음으로 말씀하신 사람은 누구일까? 언제부터 이러한 말이 사용되었을까? 필자는 궁금하여 그 근거를 찾아 본 적이 있다. 이 말은 고려 말의 나옹 스님(1320-1376)께서 처음으로 사용한 것 같다. 나옹 스님은 승원가(僧元歌)(한국불교전서 6권 746페이지)라는 노래를 지으면서 사용하였다. 승원가는 총 6편 405구절로 되어 있는 염불을 권유하는 장편의 권념가(勸念歌)의 노래이다. 나옹 스님께서는 많은 시와 노래를 남겼으나 그 중에서도 서왕가(西往歌)와 승원가(僧元歌)는 나무아미타불의 정토염불을 권유한 가송이다. 특히 승원가는 한자의 음을 빌려 이두문자로 표기하고 있어서 일반 서민들을 위한 노래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효시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 중 5편의 18과 19대목에 보면,
아미타불 염불법은/ 온갖일에 걸림없어/ 승속남녀 물론하고/ 유식무식 귀천간애/
소업을 폐치말고 / 농부거던 농사하며/ 노난입애 아미타불 /
직녀거던 길삼하며/ 노난입애 아미타불/
금생애 이타하고 / 행주좌와 이어하면/ 후생극락 어려울까 /
많은즉 육자염불 / 적은즉 사자염불 / 행주좌와 어묵간애 /고성이나 은념이나/
대소간 육자사자염불을/ 근력대로 염불해도/ 슬픈것은 아미타불/
조흔이도 아미타불/ 노난입애 잡담말고/
아미타불 말벗삼아/ 염염애 아미타불/ 시시애 아미타불/
처처애 아미타불/ 사사애 아미타불/ 일생애 이러하면/ 극락가기 어려온가/
라고 한다.

지금부터 650여년 전에 나옹 스님께서 지은 승원가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스님께서는 농부는 손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라고 하며, 길삼하는 아낙네는 손으로 길삼하면서 입으로 염불하라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입으로 염불하며, 슬퍼도 염불하고 기뻐도 염불하며, 잡담말고 부지런히 염불하라고 하셨다. 이러한 가르침은 바로 노동염불이고, 생활염불이며, 장시염불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이론적으로는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이며, 노동과 수행이 하나이고 일상생활이 곧 수행이라고 하지만, 이와 같이 분명한 방법을 제시한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나옹큰스님의 유업을 현창하기 위하여 스님의 고향인 영덕군에서는 지난 1월에 학술적 세미나를 가졌다. 그리고 그 때의 성과를 기반으로 지난 10월 21일에는 나옹왕사사적비를 건립하고 경축행사까지 개최하여 지방민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시켰다. 이 고장에는 고려말의 충신이며 유교와 불교를 섭렵한 목은 이색(李穡 1328년-1396)의 고향이기도 하다. 두 분은 같은 향리 사람으로서 선후배 사이였고, 평소에도 교분이 가까웠으며, 이색은 나옹 스님의 비문을 짓기도 하였다. 영덕에서는 두 분을 나란히 현창하니 타 고장에서 본 받아야할 미풍인 것 같다.

보광 스님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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