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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 깊은 책 읽기]종교인의 필독서 - 보현행원품

기자명 법보신문

『미국에서 강의한 화엄경 보현행원품』
광덕 옮김·박성배 강의 / 도피안사

보현행원품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과 신뢰는 좀 유별납니다. ‘전국민적’인 애정을 받는 금강경과는 달리 보현행원품은 마니아(mania)층이 따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나는 보현행원품을 처음 만났을 때 적잖이 실망했습니다. 재미있는 예화도 없고, 기억하며 수시로 인용할 만한 문장도 눈에 띄지 않았으며, 전광석화처럼 내 무지를 단번에 날려버릴 교리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사업 실패와 가정불화로 고민하던 끝에 보현행원품을 만나서 눈물을 흘리고 위안을 얻으며 다시 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길고 긴 수행의 끝에 이 경을 만난 수행자는 얼음처럼 차갑게만 느껴지던 진리의 이면에서 더할 수 없이 따뜻한 온기를 발견하고 위로를 얻습니다. 그리고 출세간의 일방통행로에서 벗어나 아주 크게 발길을 돌립니다. 그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상처 입은 생명이 좌불안석, 좌충우돌하며 서툴게 악업을 짓는, 사람이 사는 세계입니다.

금강경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금강경 하나만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다 설명하겠다며 호언장담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보현행원품을 읽는 사람들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팔만대장경 앞에서 끝없이 옷깃을 여밉니다. 배우고 읽어가야 할 것들에 대해서 한없는 경탄의 눈길을 보냅니다. 배움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절망하거나 움츠려들지 않고 오히려 행복해하며 경전을 펼칩니다.

어떤 불자들 중에는 ‘죄(罪)도, 죄 지은 자도, 피해를 입은 자도 본래 없는 것이야’라며 이 이치를 깨닫는 것이 바로 부처되는 길이라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만, 그 이치를 소리 내어 떠들기만 할 뿐 진짜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현실적인 보상과 마음이 담긴 용서를 구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현행원품을 읽는 사람들은 무심코 저질렀을지도 모를 행위들에 대해서조차 끝없이 뉘우치고 미안해합니다. 그렇다고 미안해하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보현행원품을 읽는 사람들은 ‘모든 것은 내 마음 하나에 달렸다’며 골방에 틀어박혀 참회를 한 뒤에 제 마음 하나 청정해졌으니 이제 문제는 다 해결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악으로 가득 차 있거늘 내 마음이 청정해졌으므로 일체 세계가 청정해졌다고 자위하는 수행자에게 더 큰 참회를 요구하는 것이 보현행원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의 참회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장애요소인 죄를 제거하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나야 진실한 참회”라는 저자의 설명(135쪽)에서 어쩌다 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받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본래…’ 어쩌구, ‘영성…’ 저쩌구 하기만 할 뿐, 몸으로 그렇게 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를 깨우치는 경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를 그렇게 살게 해주는 경전,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서게 하는 경전, 그것이 바로 보현행원품입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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