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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43. 수희찬탄에 담긴 의미

기자명 법보신문

남의 선행 찬탄하는 착한 마음도 보시다

욕심 많은 사람은 천상에 갈 수 없다.
어리석은 자는 베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베풀기를 좋아하므로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복을 누린다.
 - 『법구경』

 

대승불교에서 모든 착한 일을 몸소 실천하면서 자신이 행한 어느 것 하나에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이를 보살(Boddhi-sattva)이라고 부른다. 이 보살은 6바라밀을 실천하는데 그 첫 번째의 선행이 남에게 모든 것을 베푸는 행위이다. 이는 부처님 가르침에서 대단히 중요시 여기는 보시, 즉 베푸는 행위의 실천인 것이다.

보통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자신이 소유하는 것이 먼저이고, 남에게 베푸는 것이 그 다음이다. 그러나 보살의 삶은 남에게 베푸는 것이 언제나 우선한다. 나에게 소유물이 없어서 남에게 베풀 것이 변변치 못할 때에는 심기일전하여 외적인 소유물을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내적인 보물을 찾아서 베풀라고 가르치는 것이 보살의 길(菩薩道)이다. 나에게 이미 소유하고 있는 내적인 보물이란 무엇일까?

깊이 한번 자신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찾아낸 품목 중에 최고의 것은 나 자신의 주인인 보배로운 나의 마음이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이 보배로운 마음이 주인 노릇하는 모습을 살펴보자. 나의 인자한 얼굴과 자애로운 말 한 마디, 곧 화안애어(和顔愛語)로서 많은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기쁘게 할 수 있다. 눈으로 웃어주고 귀로는 남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코로는 사람의 덕의 향기(德香)를 맡아서 자신에게 옮겨올 수도 있는 것이다. 손으로 남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거나 넘어지는 이를 손잡아 줄 수도 있다.

보배로운 마음의 보시 ‘화안애어’

이렇게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남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베풀고 사는 것은 바로 서로의 기쁨을 이끌어 내는 방법이다. 베풂으로서 기쁨을 만드는 가르침이 곧 『화엄경』십지품 초환희지에 설해져 있다. 보살이 자신의 몸과 수족까지도 남을 위하여 기꺼이 내어줄 수 있을 때, 베푸는 행위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요즈음 아낌없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는 행위가 바로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그리고 보살은 이 모든 베푸는 행위에 대해서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는 데에 더욱 거룩함이 있다. 보살은 자신이 행한 거룩한 행위에 대해서 대가를 받으려고 하지도 않거니와 탐착하는 마음도 없다는 것이 곧 『금강경』의 제28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의 내용이다. 이와 같이 남에게 베푸는 것으로 수행을 삼는 보살들이 마음으로 베푸는 최종적인 단계는 수희찬탄의 자세일 것이다. 수희찬탄(隨喜讚嘆)이란 다른 사람이 착한 일을 하거나 공덕을 짓는 모습을 보고 함께 기뻐하고 찬탄해 마지않는 마음가짐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도 착한 일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이 하는 착한 일에 조차 넉넉한 마음으로 동참하지 못하며 산다. 그래서 항상 세상이 메마르고 착한 일하는 행위가 감추어지고 마는 것이다. 용수보살의 『대지도론』에는 수희찬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향을 서로 팔고 사는 일에 비유하고 있다.

어느 날 향을 가득히 등에 지고 향을 팔러 나선 상인이 있었다.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거리에서 향을 팔려고 전을 차렸다. 좋은 향기가 진동하자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향을 구경하기 시작하였다. 그 사람들 중에는 향이 좋아서 사려고 마음먹는 이도 있었고, 그저 사고파는 모습을 구경하는 이도 있었다. 물론 향의 소유주인 상인도 향을 팔기 위해서 향을 지키고 서있었다. 거리에 펼쳐 놓은 향을 중심으로 하여 사려는 사람, 팔려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 등 향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목적은 각각 다르지만, 정작 향의 가장 중요한 향기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남이 하는 착한 일을 보고 수희찬탄 하는 마음을 내는 것은 바로 향기를 공유하는 것과 같아서 내 것도 네 것도 아니며, 착한 일을 하는 사람과 그것을 보고 함께 기뻐하고 찬탄해 주는 사람의 것이라고 수희찬탄의 공덕을 말씀하셨다.

각박한 세상의 가장 쉬운 선행

우리는 같은 시대 같은 세상을 함께 살아가면서 얼마만큼 수희찬탄의 공덕을 지으면서 살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수희찬탄은커녕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질투의 삶을 사는 데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세상에 유행하고 있는 ‘칭찬합시다’ 는 이미 부처님께서 수희찬탄으로 그 가르침을 남기고 계신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너무나 인색하고 각박한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여력이 없어서 공덕을 짓지 못할 때에는 남이 짓는 것을 기뻐해 주는 것만으로도 공덕이 되고 착한 삶이 된다는 간단명료한 선행조차도 실천하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불교의 베푸는 행위를 물질적인 것으로 한정할 때 남을 향한 베풂에는 한계를 느낀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마음으로 베푸는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이미 그 한계는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베풂의 형태에 대해서 경전에서는 물질로 베풀거나(財施) 진리로 베풀거나(法施) 두려움을 없애주는 베풂(無畏施)등으로 정리하고 있다.

부자도 가난한 이도 누구나 자신이 몸소 터득한 진리로, 또는 마음가짐 하나로 베푸는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 법시와 무외시이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서 남이 행하는 착한 일을 함께 기뻐하는 수희찬탄의 보시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참으로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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