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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화 시기상조…웰다잉 교육부터”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08.12.16 09:52
  • 댓글 0

존엄사 특별기고 한림대 오진탁 교수

지난 11월28일 존엄사를 인정한 법원 판결로 인해 찬반논란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존엄사 혹은 소극적 안락사 찬반여부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는 토론문화의 결핍, 죽음문화의 부재, 그리고 조급증으로 인해 진지한 토론과 과정을 무시한 채 존엄사 문제에 대해 하루라도 빨리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이 시점에서 과연 우리 사회가 죽음문화 성숙을 위해 과연 어떤 노력을 했는지, 존엄사 법제화를 논할 정도로 충분히 준비되었는지 묻고 싶다. 죽음은 바르게 이해되고 있는가? 죽음을 연구하고 죽음준비교육을 할 수 있는 전문가는 있는가? 개개인이 죽음준비는 어느 정도 하고 있는가? 또한 우리 사회 죽음의 질은 과연 어떠한지도 묻고 싶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죽음의 질이 가장 나쁜 나라 가운데 하나다.

자살률이 OECD 가입국 중 1위로 자살대국 일본을 훌쩍 넘어섰다. 더구나 청소년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10명 중 6명이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고, 10명 중 1명이 자살을 시도했던 적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 대부분은 편안하게 임종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임종을 가장 많이 접하는 의료계에서 죽음을 외면하는 경향이 가장 심한 것은 아이러니다. 의료계가 죽음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임종이 대부분 병원에서 일어나는데도 병실과 장례식장 사이 중간단계인 호스피스실이나 임종실을 운영하는 병원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의사나 간호사 대상으로 죽음준비교육도 전혀 실시되고 있지 않다.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임종환자를 보살피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의료현장에서는 심폐사와 뇌사가 죽음정의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인간은 육체만의 존재, 죽으면 다 끝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심폐사와 뇌사는 의학적 죽음판정의 기준에 불과할 뿐이지 결코 죽음정의가 될 수 없다. 인간은 육체만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죽음이 바르게 이해되지 않는 사회에서 어떻게 존엄사를 법제화할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에서 지금까지 죽음은 터부시되어왔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죽음준비교육을 학교와 사회 교육으로 실시하고, 호스피스 제도를 활성화하고, 생전유언(리빙윌) 과 사전의사결정제도 널리 홍보하는 등 죽음문화 성숙을 위한 사회적 노력을 시작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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