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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45. 칠불통계의 가르침

기자명 법보신문

착하게 마음 쓰면 진리의 길 열린다


악한 일을 하지 말고
선한 일 널리 행해
마음을 깨끗이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 『법구경』

 

이 게송은 흔히 칠불통계(七佛通戒)라는 명칭으로 유명하다. 칠불이란 일곱 분의 부처님이라는 뜻으로, 아득히 먼 옛날부터 석가모니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는 일곱 분의 부처님들이 계셨다고 한다. 그 일곱 분이란 비바시부처님(毘婆尸佛), 시기부처님(尸棄佛), 비사부부처님(毘舍浮佛), 구류손부처님(拘留孫佛), 구나함모니부처님(拘那含牟尼佛), 가섭부처님(迦葉佛), 석가모니부처님(釋迦牟尼佛) 등이다.

이처럼 과거에 계셨던 일곱 분의 부처님께서 공통적으로 말씀하신 가르침을 ‘칠불통계’라고 하여 전해져오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모든 악한 일 하지 말고(諸惡莫作), 모든 착한일 받들어 행하며(衆善奉行), 스스로 그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自淨其意), 이것이 곧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是諸佛敎)라고 우리에게 친숙해져 있는 게송이다. 또한 이 내용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살펴보았다.

아이도 알지만 노인도 실천 못해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선(善)과 악(惡)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이야기를 해왔다. 결국 모든 생명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위의 게송에서 설하고 있는 것처럼 악은 그치고 선은 실천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매우 소박한 이야기이지만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실천이 요구된다.

중국의 문장가 백낙천이 ‘까치집선사’라는 별명을 가진 작소도림(鵲巢道林741-824)선사를 찾아가서 불법의 대의(大義)를 물었을 때도 도림선사는 이 칠불통계를 일러주었다. 대학자였던 백낙천은 불법의 대의치고는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에 실망을 금하지 못하고 도림선사에게 말을 던졌다. ‘그 정도의 이야기라면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것이니, 그 외에 달리 가르쳐줄 것이 없느냐’고 반문하였다. 이에 도림선사는 화살 같은 눈빛으로 백낙천을 쏘아보면서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다 알고 있는 것이기는 하나, 팔십 먹은 노인도 실천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라고 되받아 넘겼다. 이에 백낙천은 자세를 낮추고 다시 한 번 불법의 대의를 물었다는 일화가 전하여 온다. 백낙천은 불광여만(佛光如滿)선사를 참배하였고, 만년에는 자기의 가산을 모두 털어서 용문(龍門)에 향산사(香山寺)를 지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산거사라고 칭하면서 수행하였다고 전한다.

불교에서 선악을 중요시하는 것은 이와 같이 바로 실천의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악함은 바로 그쳐야 하고 선함은 바로 실천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화엄경』정행품의 정행(淨行)은 ‘깨끗한 행위’, ‘청정한 실천’ 등으로 풀이한다. 정행품을 시작하는 첫 머리에 지수(智首)보살이 문수보살에게, ‘참다움을 구현하려는 보살들이 어떻게 하면 몸과 말과 마음에 허물이 없음을 얻을 수 있고, 어떻게 하면 남을 해롭게 하지 않는 행위를 얻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하여 문수보살은 간단명료하게 답을 하고 있다. 즉, 만약에 모든 보살들이 착하게 그 마음을 쓰면(善用其心), 곧 일체 모든 승묘(勝妙)한 공덕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이 가르치신 진리의 길에 자유롭게 드나들며, 일체의 악을 끊고 모든 선함을 다 구족하게 될 것이라고 답을 한다. 여기에 다시 문수보살은 착하게 잘 마음을 쓰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 것이 곧 정행품의 141가지의 마음 쓰는 방법이다. 보살이 자신의 마음을 착하게 잘 쓰는 방법을 살펴보기로 하자.

일체를 비움이 그 출발

정행품의 시작에서, 첫 번째 마음을 잘 쓰는 방법은, 우리가 집에 머물러 있을 때에 집에 대한 생각을 올바르게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이 함께 머물러서 동고동락하는 주택은 가족이 원하는 것을 다 충족시키려는 욕구의 총체적인 산물이다. 집에는 자신에게 필요하고 좋은 것은 다 가져다 놓고 싶어 한다.

따라서 집은 충만의 상징이기도 하다. 집이 있다는 것은 곧 주택, 가족, 가정 등, 모든 것을 다 가졌다는 것을 의미 한다. 이러한 집은 주택, 가정 내지는 가족까지 다 온전하게 채워져 있는 것으로, 충만함을 속성으로 삼는 것이지만, 보살은 도리어 충만의 상징인 집에 머물면서 그 반대로 일체 모든 것이 공함, 텅 비어 있음을 관찰하라고 한다. 이것이 정행품 첫 번 째의 선용기심(善用其心), 잘 마음 쓰는 방법인 것이다. 모든 것이 꽉 차 있고 또한 채워야 한다는 상식을 버리고 오히려 일체를 비어버리고 또한 텅 비어 있음을 관찰함으로서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잘 마음을 쓰는 것’이며, 불교가 말하는 착한 마음을 갖는 시작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주거(住居)가 본질인 주택을 투자의 대상으로 삼는 어리석음을 중첩하면서 세상을 탐욕으로 찌들게 하고 있다. 이쯤에서 참으로 착하게 사는 마음 씀씀이가 어떠한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선과 악을 뛰어넘어서 자신의 마음이 청정하여 허공과 같이 텅 비어 있음을 확인하는 삶으로 옮겨갈 때이다. 나 스스로 선용기심(善用其心)해서 일체의 수승한 공덕을 온 세상에 가득히 채워나가야 모두가 행복해 진다는 이치를 불법을 통해서 깨달아야 한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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