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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중 기자의 일본 템플스테이]2. 코야잔 슈쿠보촌

기자명 법보신문

막부 비호 속 번성 이룬 사찰 체험마을

벌써부터 길가엔 눈꽃이 피었다. 아침 뉴스에선 일본의 최북단 홋카이도와 혼슈 동북부 지역에 50㎝이상의 눈이 쌓였다는 소식이 들렸다. 잠깐 잠이 들었다 깨보니 버스는 고개를 들고 힘겹게 가파른 산을 구불구불 올라가고 있었다. 좁은 2차선 도로 양쪽으로 차들이 가득했다. 얘기를 듣자하니 일본을 대표하는 고승인 고보대사 쿠카이(弘法大師 空海)가 입적한 날과 쇼토쿠 태자의 탄생일이 맞물린 연휴기간이기 때문이란다.

이날도 한 시간 이상을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산을 올랐다. 해발 1000m. 너무도 높은 곳이라 사찰이나 몇 개 있으려니 했는데 의외로 마을이 있었다. 그것도 그리 작지 않은 마을이다. 코야잔(高野山)은 마을 초입부터 사찰의 냄새를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고 보니 마을 전체가 사찰이었다. 도로 변에 열려 있는 가게 뒤편에는 예외없이 사찰이 존재했다. 이 역시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이 진귀한 모습은 코야잔이 ‘진언밀교’의 성지이기에 가능한 풍경이다. 1200년 전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고보대사 쿠카이 스님은 이곳에서 진언종을 열었다. 진언종은 불교와 일본의 토속 종교인 신토(神道)가 융합된 밀교종파. 과거 코야잔에는 산마루부터 정상까지 7000개 이상의 사원이 빼곡하게 존재했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사원은 127개 뿐이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콘고부지(金剛峰寺), 바로 진언종의 총본산이다. 코야잔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원이자 종교도시였다.

코야잔은 사원의 문화를 체험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해 1년 사시사철 참배객들과 여행자들로 붐비는 곳이다. 일본식 템플스테이인 슈쿠보를 체험하기 위한 슈쿠보촌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코야잔 슈쿠보는 1300년대 무로마치 시대의 문서에도 기술돼 있을 정도로 그 역사가 깊다. 콘고부지의 신도과장 오오모리(大森) 스님은 “현재 127개 사찰 중 53개 사찰에서 슈쿠보를 체험할 수 있다”고 했다. 한때는 2000개의 사찰에서 슈쿠보가 가능했다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비록 사찰 자체도 현격히 줄었고 슈쿠보가 가능한 시설도 한창 때에 비하면 턱없이 적어졌지만 그때의 전통은 아직까지도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 코야잔 슈쿠보촌 역시 히에이잔 엔랴쿠지와 마찬가지로 아무나 슈쿠보를 체험할 수는 없었다. 이곳의 특징은 각각의 사찰들이 막부의 다이묘들과 계약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도쿄의 막부는 사찰 7군데와 계약을 맺고 그곳만을 이용할 수 있었다. 아무리 권력이 막강한 막부라도 예외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는 막부들 사이에서 말없이 지켜지는 불문율과도 같았다. 특정 지역의 막부 사람이 정해진 사찰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는 그 사람이나 잠을 재워준 사찰이나 그 이후부터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었다.

이에 대해 오오모리 스님은 “일본의 전국(戰國)시대에 사찰이 토지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생존 전략이었다”며 “대신 사찰은 계약 관계에 있는 다이묘에게 언제든지 도와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고 다이묘도 그 사찰과 토지를 지켜줄 의무가 있었다”고 했다.

각 막부의 다이묘들이 자신의 관할지역 사찰이 아닌 멀고 먼 코야잔의 사찰들과 계약관계를 맺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왜 그들은 이 먼 곳까지 찾아왔을까. 그 해답은 코야잔에서만 볼 수 있는 일본 최대의 납골원 ‘오쿠노인(奧の院)’에 있었다. 일본인들은 사후 이곳에 묻혀야 서방정토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아마도 이곳의 종파가 밀교 계통의 진언종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 막부와 사찰의 계약 관계는 다이묘나 무사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됐다. 스님들도 정해진 곳에서만 숙식을 청할 수 있었다. 일본 불교의 사찰은 속세를 떠난 수행처이면서도 속세와 깊은 계약관계를 맺어야 했던 특이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대신 사찰마다 체험할 수 있는 수행의 종류나 정도가 서로 다르다. 코야잔의 대표사찰인 콘고부지에서도 슈쿠보는 가능하다. 콘고부지에서 슈쿠보를 체험할 경우 사찰에서 지정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사승 밑에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수행과 사찰문화를 체험하게 된다.

 반면 직접 슈쿠보를 체험하기 위해 선택한 적송원(赤松院)의 경우 사찰 체험보다는 휴식을 위한 료칸(旅館)에 더 가까운 편이다. 적송원은 1200년 전 쿠카이 스님에 의해 창건된 사원이다. 12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사원은 수많은 손님들이 이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로 건재했다. 본당 옆으로는 숙박시설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 연결돼 있었다. 1200년이나 된 목재는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삐익~”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견뎌온 나무가 내는 소리는 비명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신호와도 같았다.

식사는 히에이잔에서와 마찬가지로 쇼진료리(精進料理)가 제공된다. 그러나 마치 발우 공양을 하는 수행자처럼 줄을 맞춰 앉아 조심스럽게 먹도록 했다. 비록 숙박시설을 겸하고 있지만 이곳은 수행처이기 때문이다.

코야잔 수행자들의 진면목은 아침 해가 뜰 때쯤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은 해가 떠오르는 새벽과 아침시간대를 상당히 성스럽게 여기고 있다. 새벽 6시 수백 년을 살아온 아름드리 나무들이 빼곡한 산 저 편 너머로 먼동이 트려 기지개를 켤 무렵 본격적인 예불과 수행이 시작된다. 본당 한 켠에 자리 잡은 법당은 한국의 사찰들에 비해 어두운 편이다. 촛불 몇 개가 예불을 드리는 주지 스님의 시야를 밝혀주고 있을 뿐이었다.

알아듣기 힘든 언어는 독특한 특유의 음을 타고 듣는 이의 귀에 착 감겨왔다. 진언종만이 가진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보고만 있어도 절로 감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곳이 아니면 쉽게 경험하지 못할 진언 수행의 체험은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법당을 나오니 이미 코야잔이 잠에서 깨어 있었다. 이날은 간밤에 비가 왔는지 길바닥이 축축했다. 적송원 입구에 선 사천왕들은 얼마나 많은 이방인들을 맞아 주고 다시 떠나 보냈을까. 1200년의 시간을 보내며 그 자리를 지켜온 사천왕들은 그 많은 이방인들의 얼굴을 모두 기억하고 있을까.
raubone@beopbo.com

 


서방극락정토에 가길 기원했던
10만의 사자(死者)가 잠든 세계

 


코야잔의 명소 오쿠노인(奧の院)은 오쿠노인(奧の院)은 코야잔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다. 진언종을 개산시킨 쿠카이(空海) 스님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쿠카이 스님은 생의 마지막이 왔음을 깨닫고 이곳의 동굴에 들어간 후 장좌불와의 자세로 수행을 하다 좌탈의 모습으로 입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입적에 들어간 그 모습이 살아생전의 모습과 너무도 다를 바가 없어 입적 후에도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인들은 쿠카이 스님의 영혼이 이곳에 살아있다고 여기고 있다.

오쿠노인은 입구부터 가장 안쪽에 위치한 쿠카이 스님의 묘지까지 약 2㎞에 걸쳐 수많은 납골묘가 형성돼 있다. 그 모습도 가지가지. 누구의 묘는 로케트 모양으로 대리석을 깎아서 세워뒀고 누구의 묘에는 지장보살이 서있다. 누군가는 관세음보살을 모셨으며 누군가는 탑만 덩그러니 세워뒀다.

그러나 이곳에 묻힌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일본을 호령하던 인물들이다. 임진왜란의 주역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인 UCC의 창립자와 일본 기업의 전설로 불리는 마츠시타 전기의 창립자까지. 납골묘 한 기 한 기가 모두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다.

이곳에 묻힌 사람들의 납골묘의 수는 공식적으론 10만 기. 그러나 현지인들은 오쿠노인의 땅 속에, 삼나무 안쪽에, 바위 위에 얹힌 작은 돌탑까지도 모두 공양탑이라며 실제 이곳의 묘가 몇 기인지는 셀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한 현지인은 이 중 일부는 가묘(假墓)라는 사실을 귀뜸해주기도 했다.

쿠카이 스님의 묘지까지 올라가는 이 참배길은 사람들이 자신의 유골을 쿠카이 스님 곁에 두고자 발원하면서 1200년에 걸쳐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일본인들은 사후 일본 최고의 고승으로 손꼽는 쿠카이 스님 곁에서 서방정토로 가기를 염원했다는 것이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참배길은 수백 살도 더 된 삼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그 사이사이로는 사람들의 묘지가 빈틈없이 자리 잡았다. 묘한 느낌을 주는 곳이지만 묘지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는 느끼기 힘들다.

다만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습한 느낌은 다른 어떤 묘지들에 비해 더한 편이다. 묘지로만 이루어진 이 거대한 공원은 일본 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도 다시 없을 일본문화 특유의 산물이다.

오쿠노인의 이런 특이함으로 인해 유네스코는 2004년 ‘기이산 영지와 참배길(Sacred Sites Pilgrimage Route in the Kii Mountain Range)’의 일부로써 코야잔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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