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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띠해 심우도가 주는 메시지

기자명 법보신문

[논설위원 칼럼]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2009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기축년 소의 해다.
불교에서 ‘소’와 관련된 일화는 참으로 많다.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의 지명에 얽힌 설화도 그 중 하나다. 진표율사가 금강산 수행을 마치고 다음 수행지를 찾아 길을 떠나던 중 지금의 속리산에 이르렀다. 그 길에서 소달구지에 탄 사람을 만나 잠깐 걸음을 멈췄는데 이 때 소달구지를 끌던 소가 멈추더니 무릎을 꿇었다. 소달구지에 탄 사람이 그 연유를 묻자 진표율사는 말했다.

“내가 계율을 깨우친 사람임을 간파하고 법을 청하고 있다.”
그러자 소달구지에 탄 사람은 “미물(微物)의 불심(佛心)도 이리 깊은데 어찌 사람에게 불심이 없겠는가”라고 자책하면서 그 자리에서 진표율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그때부터 세속을 여의고 입산한 곳이라 하여 속리산(俗離山)이라 칭해졌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아마도 선가에서는 소와 관련해 ‘진흙소’를 떠올릴 것이다. 수행하는 선승이 가장 많이 알고 있다는 설두지송(雪竇持誦) 역시 소와 관련돼 있다.
‘바다 속 진흙소가 달을 물고 달리고, 곤륜산에서 코끼리 타고 백로가 실을 끌어당긴다.’(海底泥牛 含月走 崑崙騎象 鷺絲牽)
추사 김정희의 고택에도 이 글이 주련으로 쓰여 있어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게송이다. 하지만 불자에게 ‘소’하면 생각나는 것은 선시도, 설화도 아닌 그림 한 폭일 것이다. 바로 심우도다. 불자가 아닌 일반인도 한 번쯤 산사의 벽화에 눈길을 주었다면 소를 찾아 떠나는 동자를 보았을 것이다. 필자 역시 고등학교 학창시절 천안 광덕사에 그려진 심우도를 보고 한참 동안 서 있었던 기억이 있다. 심우도의 매력이 불교 교리를 알고 모름을 떠나 보는 것만으로도 선정에 들 수 있게 한다는 것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분명컨대 심우도에 눈길이 머문 사람은 쉽사리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마다 열 폭의 심우도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한 폭이 있을 수 있겠다. 동자승이 소를 찾는 첫 장면인 심우(尋牛)를 보며, 선가 일주문에 들어서려는 초심을 내어볼 수 있다. 동자승이 소의 뒷모습이나 소의 꼬리를 발견한 견우(見牛)나 불성(佛性)을 꿰뚫어보는 견성의 단계인 득우(得牛)에 마음이 꽂혀 용맹정진을 다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음 두 장의 그림에도 주목해 보기를 당부하고 싶다. 잔잔한 강과 만개한 꽃이 어우러진 산수풍경의 아홉 번째 그림, 지팡이 한 자루 잡고 산 아래를 굽어보는 동자가 그려진 마지막 열 번째 그림.

수행단계로만 본다면 첫 번째 그림 반본환원(返本還源)과 마지막 그림 입전수수(入廛垂手)의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 된다 하겠지만 이 역시 단견에 불과하다. 법을 전하고 싶은 마음, 내 이웃을 돌보려는 마음이 어찌 ‘견우’, ‘득우’를 거쳐야만 나올 수 있겠는가. 법을 배우고 전하고 싶은 마음 하나, 타인의 고통에도 눈물 흘릴 줄 아는 마음 하나로 시작해 ‘심우’를 지나 소도 사람도 실체가 없는 공(空)의 단계에 다다를 수 있다. 여덟 번째 그림인 ‘인우구망’(人牛俱忘)을 열 번째 그림으로 본다 해도 부처님 말씀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올 한 해 만큼이라도 ‘중생구제’에 마음을 두어야겠다. 시대착오적인 발상만 되풀이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책에 이미 등을 돌린 민심은 올 한 해 내내 자신을 얼어붙게 만들 경기한파를 어떻게 견딜지 걱정만 하고 있다.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 외국인 노동자, 실직자들의 고통이 더욱 가중될 것임은 자명하다. 한 해를 시작하며 ‘희망찬가’만을 부를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보시’와 ‘나눔’을 통해 불우이웃과 서민에게 희망을 안겨주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지혜를 발현해야 할 때다. 심우도 마지막 그림이 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보자.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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