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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묵 스님의 풍경 소리]

기자명 법보신문

풍경 속 물고기는 정진-화재예방의 뜻
항상 깨어 삼독의 불길 휩싸이지 않아야

산중에 절을 찾아드는 이들 중에는 솔바람에 울리는 청아한 풍경소리를 듣고자 굳이 먼 길을 돌아와 들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마 그들 대부분에게 그려지는 풍경소리는 노산 이은상 선생이 작사한 ‘성불사의 밤’에 그려진 ‘뎅그렁’하며 그윽하게 울리는 소리일 것이다.

설령 이 시를 전혀 모를지라도 나뭇잎들이 거개 본래 자리로 돌아갈 무렵, 어쩌다 산행 길의 땀을 식히려 물 한 모금 마시고 절간 툇마루에 앉았다가 이따금 들려오는 저음의 깊은 풍경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 사람이라면, 고엽(枯葉)을 따라 떠돌던 마음도 본래 자리로 돌아가고 깊은 평화가 찾아듦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이런 이에게 풍경소리는 천상의 소리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심하게 부는 밤, 밤새 요란하게 ‘쩡그렁 쩡그렁’ 울려대는 풍경소리에 잠을 설치며 안면방해를 겪어 본 이에게 그 소리는 그리 정겹지만은 않을 것이다. 더러는 날이 새면 풍경을 떼어 버리겠다고 마음먹어 본 이들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이 풍경소리 때문에 십 수 년 전 소송까지 벌어졌다고 하니 풍경소리가 항상 모든 이에게 마냥 그렇게 천상의 음악처럼 아름다운 것만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일까? 산사이지만 풍경이 매달리지 않은 곳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절에서 수시로 안면을 방해하는 이 요란한 소리의 주인공을 그대로 그렇게 놓아두는 것은 왜일까? 작년 설, 강주 스님을 모시고 강사 스님들과 함께 산내 암자 축서암에 주석하시는 수안 스님께 새해 인사를 갔을 때였다. 스님께서는 인사를 받고는 덕담을 건네신 후 선화 한 폭씩을 선물로 주셨는데 화제(畵題)가 풍경(風磬)이었다.

어른 스님께서 나누어 주기 전 그림을 펼쳐 보여 주시면서 풍경에 물고기 모양의 금속판을 왜 달아 놓았는지 알고 있냐고 물으셨다. 우리가 그저 아는 대로 “잠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수행자는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달아놓은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씀 올리니, 어른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래 그런 뜻도 있겠지. 하지만 여기에 주술적 의미도 곁들여 있어. 화기(火氣)를 누른다는 것이지. 즉 불이 나지 않도록 예방적 차원에서 물고기 모양의 금속판을 매어달아 놓은 거야. 그래서 나는 풍경을 그려놓고 팔정도를 써 넣었어.”

스님 말씀을 듣자니 통도사에서 단오날이면 각 전각 안팎 네 모서리에 소금단지를 올려놓는 일이 생각났다. 바닷물 기운의 축적인 소금으로 화기를 누른다는 것인데 풍경에 매달린 물고기 모양에도 같은 뜻이 깃들어 있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스님이 말씀하신 불은 실제의 불만이 아니라 마음의 불이 함께였다. 바람이 세찰수록 화제의 위험이 그만큼 높기에 그런 밤 풍경은 밤새 울려 대중에게 경각심을 주어 깨어있게 하여야 하고, 우리 마음에 팔풍(八風)-이익이 되는 것(利), 세력이 줄어드는 것(衰),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毁), 기리는 것(譽), 칭찬 하는 것(稱), 비웃는 것(譏), 고생되는 것(苦), 즐거운 것(樂)-이 거셀수록 올바로 깨어있어야만 삼독의 불길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가르침이었다. 그렇기에 팔정도를 써 넣으셨던 것이다. 그 풍경그림을 가지고 오면서 참 귀한 선물과 가르침 받았음을 깊이 감사들이며 이 그림이 두루 베풀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요즈음 어느 때보다도 바람이 거세 그 그림을 자주 생각하게 한다. 밤바람이 세찬 이 시절, 요란해도 좋으니 모두를 깨우는 풍경소리가 더욱 크게 울렸으면 좋겠다.

정묵 스님 통도사 포교국장


정묵 스님은
1992년 두타 스님을 은사로 득도, 청하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1996년 비구계를 받았다. 스님은 송광사 강원과 실상사 화엄학림을 졸업했으며 2006년 11월 은해사 승가대학장 지안 스님으로부터 강맥을 전수받았다. 스님은 법주사와 통도사 강원에서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통도사 포교국장 소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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