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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淨土)의 새해

기자명 법보신문

[논설위원 칼럼] 이기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다사다난했던 무자년이 지나고 이제 대망의 기축년이 밝았다. 지난해는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인간의 무분별한 탐욕으로 빚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쓰나미가 미국경제를 침몰시키고 우리에게 험한 풍랑으로 다가왔다. 교계에서도 이명박 정권하에서 전개된 비열한 불교배척음모가 우리 불자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새해에는 자비와 지혜의 불광(佛光)이 밝은 희망으로 온 누리에 가득하길 기원한다.

어느 늦은 가을날 상암동 난지도에 갔었다. 억새가 섬에 가득했고 길가엔 아름다운 꽃들이 흐드러져 가을을 장식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느라 분주했다. 석양이 되자 붉은 해가 억새 숲 너머 서산으로 지고 있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둥근 해가 사라지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1990년대에 학생들과 난지도의 지하수 오염상태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난지도는 쓰레기 매립장으로 악취가 진동했고 쓰레기에서 흘러나온 폐수가 한강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잠시 있기에도 견디기 어려운 역겨운 곳이었다. 이 쓰레기 매립장이 10여년이 지난 후 이제 서울시민들이 즐겨 찾는 아름다운 공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예토(穢土)가 정토(淨土)가 되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물리학에 엔트로피(entropy)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외부와의 에너지 교류가 없는 닫힌 환경에서는 오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현상만 발생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그런 환경에서는 오직 불균질(不均質)한 상태에서 균질한 상태로만 모든 현상이 진행하고, 또 그렇게 에너지가 흘러간다는 말이다.

우리 인간의 생활은 본질적으로 에너지의 흐름 위에서 유지된다. 어떠한 개인적 활동, 사회적 활동도 에너지의 흐름 위에서 전개되며 결국 지구의 엔트로피가 증대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인류의 문명은 지구를 균질화시켜 결국 지구는 어떤 가용에너지도 찾아볼 수 없는, 쓰레기로 가득 찬 황무지로 변해간다. 이런 황무지에서 에너지의 흐름은 사라지고 인류문명의 꽃은 시들어 버린다. 불교에서 말하는 예토, 말법(末法)시대의 환경을 물리학적 측면에서 이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지구의 환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고 있다. 산업화가 가속되어 도처에 쓰레기가 넘치고 지구온난화의 재난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절체절명의 화두는 환경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예토를 정토로 바꿀 수 있을까? 마치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난지도를 아름다운 생태공원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처럼. 불교가 여기에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나는 정토불교에 그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불교는 마음이 청정하면 그 환경이 청정해진다고 가르친다. 나는 마음이 청정하지 못한 사람이라 그 청정한 정토의 정경을 알 길이 없다.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깨달음의 세계가 어떠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비롭게도 나에게 그 세계를 보여주셨고 그 세계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라 수행도 부실하고 절에도 자주 가지 않는다. 최근에는 더 게을러 어떠한 수행도 않고 단지 아미타경만 읽고 아미타불 염불만 한다. 다만 아미타경에 설해진 극락정토의 지극히 아름답고 청정한 정경을 그리워만 한다.

나는 극락정토의 모든 아름다운 장엄이 나를 깨달음으로 이끄는 만다라이고 그 세계의 모든 아름다운 음악이 나를 깨달음으로 이끄는 만트라라고 생각한다. 우악하고 게으른 나에게도 이런 수승한 길을 가르쳐주신 석가모니께 한없이 감사드릴 뿐이다. 깨닫고자하는 어떤 강박관념도 없다. 그저 정토의 아름다움을 그리워할 뿐이다.

이기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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