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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지성] 3.특별기고-박이문 포항공대 명예교수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는 지구 생사문제 치유할 대안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과 국보 83호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기독교는 성과 속의 이원론을 철학적 배경으로 하지만 불교는 성과 속이 융합된 일원론적 세계를 주장한다.

空과 解脫 중심 사상 윤리적 사유 기초될 수 없어
서양세계관 대체 위해서는 철학적 문제 보완해야

법보신문이 지난 1월부터 불교와 서구의 대표적 지성들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조망하는 ‘불교와 지성’을 연재하는 가운데 박이문 포항공대 명예교수가 최근 ‘불교의 서양적 수용’을 보내와 이를 전문 게재한다.  편집자

기독교는 개화, 개혁, 서양화라는 이름의 물결을 타고 한국에 들어 온지 한 세기 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않았는데도 급속도로 성장하여 전통적 무교는 물론 전통적 불교까지를 훨씬 뒤에 제치고 수적으로는 물론 정치적, 경제적 및 문화적 모든 차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한국을 덮고 있는 성당이나 교회의 수를 생각해보라. 기독교의 이 같은 성장은 한국의 경우 특히 유별나지만, 동아시아 전반에서 다같이 확인되는 현상이다. 과학기술문명의 뒤를 따라 들어온 서양의 기독교는 이제 지역적 경계를 넘어 명실공히 모든 세계가 서양의 전통적 세계관을 대변하는 기독교의 영향에 놓여있게 되었다.

세계는 기독교의 영향력 아래

세계관적 더 정확히 말해서 종교적 관점에서 본 서양과 동양의 위와 같은 관계는 다른 관점에서 동양과 서양의 관계에서 볼 때는 정반대였다. 동아시아의 전통적 세계관을 대표하는 불교가 서양에 미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미미했다. 17세기 철학자 라이프니츠,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인도와 중국의 힌두교, 불교 및 중국의 도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하고, 그 후 동양철학, 불교에 관한 언급, 관심 그리고 반응을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 니체 그리고 쇼펜하우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헤겔과 니체가 불교적, 도교적,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동양적 사유를 각각 비이성적 침체된 것 이라는 이유로 경멸하고, 염세적 세계관이며 수동적 인생관이라는 이유로 심한 멸시감을 쏟아 냈던데 반해서 허무주의였던 쇼펜하우어는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허무주의적 요소가 짙은 동양사상 특히 불교를 자신의 큰 철학적 틀로 삼았던 것 같다.

하지만 서양에서의 불교의 본격적 보급과 영향은 2차 세계대전 몇 년 후인 50년대 이후였다. 그것은 당시 미국문학에 소설가 케르악, 시인 긴스버그 및 슈나이더가 중심이 되었던 비트 문학운동(Beat Movement)의 선풍과 재미 일본 저술가 스즈키, 일본 교토에서 선(禪)을 공부하고 미국에 돌아와 불교 특히 선불교에 관한 많은 대중적 저술을 낸 앨런 왓츠와 독일계 미국 정신분석학자 프롬의 선불교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선불교에 매료되어 있었던 이들은 당시 세계의 사조를 지배했던 실존주의적 사상에 심취하고 있었던 지식인이기도 했다. 실존주의와 선불교가 당시 뗄 수 없이 얽혀 있었던 것은 1979년도에 출판된 『선(禪)과 모터사이클 유지 기술』라는 퍼시그의 자서전적인 실존적 경험 소설이 당시 베스트셀러로서 큰 선풍을 일으켰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미국에서의 선불교의 영향은 앞의 책과 같은 해에 출판되어 미국에서 최고의 권위 있는 퓰리처상을 받은 이론물리학자 호프스타터가 자신의 저서 『괴델, 에숴, 바하』에서 선불교의 깊은 철학적 및 물리학적 의미를 강조하고, 역시 이론물리학자들인 카프라와 쥬카프가 각각 자신들의 저서 『물리학의 도(道)』와 『무위(無爲)의 도사(道士)들의 춤』에서 현대의 최신물리학은 자연현상이 기계적 인과법칙을 깔고 있는 전통적 과학이론이 아니라 동양적 불교나 도교의 사상에 비추어 보다 잘 설명될 수 있음을 주장함으로서 더욱 확산되고 강화되어왔다.

거기에는 지금까지와는 정 반대로 근본적 진리는 동양이 서양에서 배울 것이 아니라 서양이 동양에서 배워야 할 차례라는 논리와 선불교와 도교를 핵심으로 한 동양의, 더 좁게는 동아시아의 사상이 서양에 영향을 미치고 서양문화를 지배해야 한다는 논리가 잠재되어있다.

가령, 몇 년 전 발간된 미국인 현각 스님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나 프랑스 리카르 스님과 프랑스 학술원회원인 철학자자 자신의 아버지인 르벨과의 동서철학에 대한 대화록인 『승려와 철학자』라는 두 권의 책들이 서양에 급속도로 미치는 불교의 힘과 영향을 입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자의 저자가 미국의 유복한 전통적 가톨릭 집안에 태어난 후 명문대 예일대학 철학과를 나오고 또 하나의 명문대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수료한 대표적 지식인이라는 점과 후자의 저자가 프랑스의 대표적 지적 집안 출신으로 물리학으로 노벨상을 받을만한 수재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전자의 선불교 수행자로서의 출가와 후자의 티베트 불교신도로서의 출가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그들의 불교로의 개종이 어떤 시대적 흐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깊고 깊은 차원에서의 철학적 숙고의 결과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사실은 그 이전과는 달리 서양에서의 불교, 노장사상 등 동양사상에 대한 관심의 확대와 영향의 깊이의 징표로 삼을 수 있음을 말해준다.

서양의 불교수용 50년대 후 본격화

백 년 전까지와는 달리 동양과 서양의 사상적 침투와 세태, 지배와 복종의 관계는 즉 서양의 기독교와 동양의 불교와의 역학적 관계는 역전되어가고 있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 수많은 신도를 모으고 있는 베트남 국적의 틱낫한 스님의 불교의 성공적 포교 활동, 서양 각국에서 한국에 와서 출가하고 있는 많은 지식인들의 존재, 네팔에서 만날 수 있는 승복을 입은 젊은 서양인들의 모습, 티베트불교의 지도자 달라이라마가 누리고 있는 세계적 차원에서의 존경과 정신적 권위도 지금 정신적, 영적 차원에서의 동서간의 관계가 온전히 바뀌어가고 있다는 인식을 강화해 줄 수 있다.

불교에 대한 위와 같은 서양의 새로운 인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서양의 과학이 놀라운 속도로 보여준 지적, 기술적 및 물질적 경의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세련된 과학기술문명의 이면으로 나타난 끔직한 세계대전의 경험, 과학적 지식이 들어낸 기독교적 세계관의 허구성, 그것이 남긴 황폐한 즉 허무주의적 형이상학의 풍경, 물질적 즉 외형적 가치의 한계에 대한 인식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하면 불교의 본질은 대체 무엇인가? 동양의 세계관은 힌두교와 불교 및 도교와 유교 등 서로 다른 것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불교로 대표된다고 본다. 두 가지 근거를 댈 수 있다.

첫째, 그것들은 근본적으로 불교에 깔려있는 일원론적 세계관이 기독교와 플라톤의 세계관의 공통된 핵심인 현상과 본질, 속(俗)과 성(聖),이라는 이원론적 세계관과 대립되고, 힌두교, 도교 및 유교의 세계관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일원론적 동양적 형이상학은 불교에서 말하는 색시즉공(色是卽空), 공시즉색(空卽是色)이라는 말로 압축된다. 둘째, 불교가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가치는 물질적이 아니라 정신적, 몸이 아니라 마음, 외형적이 아니라 내면적 인 것이며, 공격적이 아니라 화해적이다. 이런 불교의 가치관은 힌두교, 도교 그리고 유교와는 약간 다른 형태를 띠지만 근본적으로는 동양 사상에 공통된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은 불교의 일체유심(一切唯心)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물질주의 폐해 해결 동양에서 찾아

이 두 가지 입장을 불교를 비롯한 모든 동양사상의 핵심으로 인정할 때, 불교는 서양의 이원론적 세계관, 물질적 가치관, 공격적 태도의 산물인 오늘날의 물질만능주의적, 자본주의적, 공격적 과학기술 문명의 정신적 공허감, 형이상학적 허무주의, 자연환경 파괴의 지구적 생사의 문제를 치유하고 해결하는 유일한 대안적 정신문명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 세계는 서양중심적 문화에서 동양중심적 문화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티베트의 불교문화에 매료된 인류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1992년이 낸 자신의 저서 『오래된 미래』에서 “죽음에 대한 라다크인들의 태도는 놀랍게도 유연하다. 죽음을 생로병사로서 생의 순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이 이 생의 유일한 기회라고 믿지 않는다. 그들에게 삶과 죽음은 계속적인 회귀 과정의 일부이다”라는 말로 불교의 본질을 이해하고, 콜롬비아 대학의 명예 교수 드 배리는 1988년 낸 자신의 『동아시아의 문명』이라는 저서에서, “우리는 동아시아인들이 몇 여러 세기 동안 그렇게 살아 왔듯이 밖의 무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유한한 내면의 깊이를 탐구해야 할 것이다”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불교의 세계적 영향은 아직도 극히 미미하다. 교회당이나 성당이 지천인데도 계속 그 수가 늘어나는 한국만의 현상에 비추어 볼 때 전통적 불교문화권인 동아시아를 제외한 지구 전체에 몇 천 개가 아니라 몇 백 개의 절(寺)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아직도 유럽과 미국의 큰 대학에서 불교나 그 밖의 동아시아 사상은 철학과가 아니라 잘해야 동아시아 지역학과에 귀속되고 있으며, 엄격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의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의 고명한 철학자 단토가 1972년에 낸 자신의 책 『신비주의와 도덕철학』에서 서양의 동양인들은 물론 많은 서양인들이 서양의 도덕적,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정신적 위기의 해결은 동양을 대표하는 힌두교, 불교, 도교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동양적 사상을 철학적으로 분석할 때 그러한 희망은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윤리는 타인의 실재성을 전제할 때만 의미를 갖는데 모든 존재를 ‘공(空)’으로, 모든 현상을 ‘환상(maya)’으로 보고, 그것으로부터의 형이상학적 ‘해탈/해방(moksa)’을 찾는 힌두교와 불교는 물론 도교도 다같이 종교적 사상이지 윤리적 사유의 기초가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단토에 의하면 힌두교·불교·도교의 문제가 개인과 우주전체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문제라고 한다면 그것들은 종교에 속하고 인간간의 관계 설정을 결정하는 문제라면 도덕에 속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편으로 앞에서 인용한 드 배리 교수의 불교와 도교의 현대적 보편적 중요성에 관한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다른 한편으로 인류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불교의 핵심에 관한 인식이 맞는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단토의 논리와 판단이 옳다면, 힌두교, 불교 그리고 도교 등의 동양적 세계관이 기독교 및 과학으로 상징되는 서양적 세계관을 만족스럽게 대체할 수 있는 보편적 사상으로 자리를 굳히기 위해서는 불교 그리고 그 밖의 동양사상은 단토가 지적한 동양사상의 철학적 문제점을 보완하여 철학적으로 좀 더 설득력 있는 이론을 정리하거나 아니면 새롭게 고안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서구 관심에도 불교 영향력 미비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불교와 도교를 중심에 둔 동양사상에 대해서 급속히 커가는 서양인들의 관심을 보고, “21세기 이후의 세계는 동양의 세계다”라는 동양인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문화적 자존심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아직은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는 생각을 나는 하게 된다. 
 
박이문 포항공대 명예교수


박이문 교수

서울대 불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불문학 박사와 철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화여대 철학 및 미학과 초청교수 등을 거쳐 포항공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0년 정년퇴임했다. 현재 시몬스대학·포항공대 명예교수, 연세대 특별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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