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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53. 사랑이라는 것

기자명 법보신문

사랑-미움 한 뿌리니 둘 다 버려야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지 말라.
미운 사람과도 만나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 『법구경』

위의 게송은『법구경』제16 ‘쾌락의 장’ 또는 ‘사랑하는 것’에서 설하신 가르침이다. 이 ‘쾌락의 장’에서는 인간의 사랑, 애정, 쾌락, 욕정, 헛된 집착 등에 기인하여 벌어지는 끝없는 괴로움을 경책하고 있다.

부처님 당시에 한 가족이 함께 출가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아들이 먼저 부처님 교단에 출가를 하였다. 외아들이 출가를 한 다음 아버지도 아들의 뒤를 따라서 비구스님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집을 혼자서 지키던 어머니도 아들과 남편의 뒤를 따라서 출가의 길을 결심하였다고 한다. 이들 가족은 자연스럽게 대중의 모임 등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는 사찰 내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옛날의 가족처럼 생활하였고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었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들의 생활은 수행자의 모습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승가의 규칙에도 어긋나는 일이 되었고 많은 동료들의 지탄을 받는 사이에 부처님도 이 일을 아시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을 경책하기 위하여 위의 게송을 말씀하셨다고 전한다. 진정한 출가 수행자의 길은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떨쳐버리고 집을 떠나온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이미 버렸는데 새삼 미워하는 사람을 만들어서 무엇을 하겠는가?

삶은 사랑과 미움으로 점철

사랑과 미움에 대해서 이 일을 좀 더 확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세상의 삶이란 사랑함과 미움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미워할 상대도 갖지 말라는 가르침은 처음에는 출가 수행자에게 경책으로 하신 말씀이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사랑하고 미워함으로 세상은 온통 고통에 휩싸여 있다.

매일 방영되는 드라마의 단편에서 조차 애증(愛憎)을 빼고는 이야기가 엮어지지 않는 듯이 보인다. 각 화면마다 싸우고 미워한다. 우리가 즐겨서 바라보고 있는 드라마가 단순히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부분은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는 데에 두려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러한 드라마의 화면을 들여다보고 모든 사람은 소스라쳐 놀라기는커녕, 매일 같이 드라마를 즐긴다고 하는 데에 새삼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부처님의 경책의 말씀도 가르침이거니와 일상에서 벌어지는 애증의 갈등도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경책의 말씀으로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일상의 경험을 통하여 보면 사랑과 미움은 뿌리가 같다. 사람들은 너무 좋아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거나 서운한 일이 생기면 점차로 미움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원래 사랑이 없던 사람에게는 서운해질 일도 없고 기대하는 마음도 없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바라는 바가 있고 그래서 서운함이 생긴다. 서운함이 더해 가면 어느새 미움으로 변하는 것이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울고 웃는 드라마 같은 우리의 삶을 관조(觀照)해 보라.

자신이 바라보는 상대방의 모습에 따라서 사랑하고 미워하는 감정이 요동친다면 나 자신의 삶의 모습 또한 무게도 없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 진실하지 못하다.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환상의 이야기들이 실제로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라면 얼마나 놀라워해야 할 일인가를 깨닫게 한다. 드라마는 단순히 웃고 즐길 일이 아니라, 참다운 스승으로 자신의 삶과 마음의 자세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허상에 얽매여서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스스로를 다스리는 수행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부처님 당시에 외아들을 잃은 부호가 아들이 죽은 일순간에 기쁨은 사라지고 매순간이 비통함으로 바뀌어 날을 지새우고 있었다. 이를 가엽게 여기신 부처님은 그 부호의 집을 방문하시어 세상의 허상(虛像)에 대해서 법을 설하셨다. 태어남도 허상이며 죽음도 허상이지만, 사람들은 태어나면 축하를 하고 죽으면 비통해한다는 것이다.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는 것을 진리로서 깨닫는 자만이 허상을 버리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동요없는 평화로움이 참 기쁨

태어남을 사랑하고 젊음을 사랑하기에 젊은 사람이 죽으면 비통에 잠기고, 늙음을 미워하고 죽음을 싫어하기에 노인이 세상을 뜨면 호상(好喪)이라고 즐거워한다. 이 또한 가볍고 점잖지 못한 행위이며 사랑과 미움에 젖어 사는 행태이다. 태어나고 죽고 젊고 늙음은 누구나 걸어가는 인생의 행로이다. 일찍 세상을 마감하기도 하고 길게 괴로운 삶을 이어가기도 한다. 참다운 불자는 사랑과 미움에 자신을 허비하지 말고 강물처럼 흘러가는 인생의 길에 진리를 깨닫는 수행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타이르고 계신다. 사랑 때문에 슬픔이 일어나고 사랑 때문에 괴로움이 생긴다. 사랑으로부터 벗어나 있고 미움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사람에게는 슬픔도 괴로움도, 그리고 두려움마저도 이미 없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삶의 진리를 깨달음으로서 그 무엇에도 동요됨이 없는 평화로움만이 그에게 벗할 것이라고 『법구경』쾌락의 장을 통하여 큰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것이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원심회 김장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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