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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54. 쾌락의 병폐

기자명 법보신문

불꽃에 반해 뛰어들지 말고
어둠을 밝히는 지혜 있어야

쾌락에서 근심이 생기고
쾌락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쾌락에서 벗어난 이는 근심이 없는데
어찌 두려움이 있겠는가.
 - 『법구경』

 

『법구경』‘쾌락의 장’에는 쾌락이나 욕망에 대해서 우리의 어리석은 집착을 철저하게 경책하고 계신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시고 길을 걸어가고 계셨다. 마침 그 때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그 나라의 왕자들과 귀족 청년들의 일행과 마주쳤다. 그들은 큰 축제에 참석하기위하여 아름다운 옷과 화려한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축제의 즐거움으로 마음이 들떠서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러한 청년의 무리를 지나치시면서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에 천상의 세계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저들 왕자의 무리를 보라. 참으로 화려하고 행복에 넘쳐있는 것이 마치 천상에서의 모습과 같다.”라고 의미 있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왕자들의 축제는 아수라장으로 변하였다. 왕자와 귀족청년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각축을 벌이다가 마음을 상하고 급기야는 싸움에 이르게 된 것이다.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청년들은 폭력을 행사하였고 축제는 천상의 모습에서 일순간에 지옥의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 아름다운 옷은 찢기어 추한 몰골이 되었고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쓰러져 있었다. 이미 왕자의 품위나 축제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아수라장 된 귀족의 축제

부처님은 성내에서의 공양청을 마치시고 수행 처로 되돌아가시는 길에 축제의 아수라장을 목격하시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비구들을 경책하셨던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감각적인 쾌락행위가 얼마나 볼품없고 헛된 것인가를 눈여겨보라고 가르치셨다고 한다. 여름밤에 불나비가 뜨거운 불에 자신이 타버릴 것도 깨닫지 못하고 휘황한 불빛을 탐하여 자신을 내던지고 있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지혜로운 삶이란 불빛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불빛을 통하여 밝음을 얻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 불 속에 몸을 던져서 고통을 끌어안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도록 중도(中道)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출가 전 왕자로 계시면서 부왕의 보살핌으로 쾌락의 극치를 체험하신 분이다. 계절에 맞는 여러 곳의 궁전과 아름다운 여인의 향락을 맛보았다. 아름다운 부인도 있었고 귀여운 외아들 라후라도 있었다. 그러나 밤과 낮으로 이어진 향락의 극치에서 향락에서 오는 고통과 향락의 허상을 보고 몸서리를 치신 분이기도하다. 그리고 급기야 출가의 길을 선택하셨다. 출가 초기에 수행자의 길을 걸으신 첫 단계에서 지난 세월 향락의 허상을 떨쳐버리려는 듯, 철저한 고행을 몸소 행하셨다. 곡식 몇 알로 하루를 보내시는 고행을 실천하셔서 피골이 상접한 고행상이 오늘에도 전하여 오고 있다.

6년간의 긴 세월 동안 고행을 몸소 실천하신 석가모니부처님은 맹목적인 고행은 소중한 우리의 육신만 상하게 할 뿐, 깨달음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고행자의 수행을 버리셨다. 그러나 당시 인도에서 고행지상주의자들로부터 그에게 주어진 것은 ‘타락자’라는 낙인이었다. 석존은 이러한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스스로 판단하여 옳다고 여겨지는 진리만을 향하여 길을 걸어가셨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괴로움과 즐거움의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거나 탐착하지 않는 ‘고락중도(苦樂中道)’의 가르침을 펴신 것이다. 이는 스스로 체험해서 얻어진 결론이었기 때문에 어느 하나에 치우쳐 집착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확연히 아셨던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진리의 길에 역행하는 것임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후 불교는 일관되게 중도의 가르침을 표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치우침 없는 중도가 참 행복

현상세계의 모든 가치는 치우침으로 일관되어 있다. 쾌락을 좋아하고 성공을 좋아한다. 반면에 고통을 싫어하고 실패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철저하게 두 가지 모습으로 전개되어 있다. 쾌락에 빠지다 보면 쾌락은 어느 사이에 고통으로 변하여 다가온다. 승리를 즐기다 보면, 국면은 변하고 또 다른 승패의 길목에 자신이 서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요동치는 삶의 길목에서 부처님의 말씀처럼 사랑과 미움을 벗어나고, 쾌락과 고통을 벗어난 곳에 자신의 참 모습을 두도록 수행해야 한다. 이제 수행은 수행자만의 전유물이 이미 아니다. 사바세계에서 고통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수행은 필수 과목인 것이다. 석가모니는 3천 년 전에 깨달음을 성취하고서 벌써 이 이치를 깨달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불교는 깨달음으로서 수행을 삼으라고 강조하였고 참다운 행복의 길이 여기에 있음을 일깨워 왔다. 유일신에게 구원을 받으면 혼자서 천당에 태어날지는 모르지만, 천당에서건 지옥에서건 바로 그 자리에서 함께 편안해 질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진리에 눈뜨는 수행자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행이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이치를 실천하는 것이며 생명이 함께 어울려 공존(共存)한다는 연기의 법을 깨닫는 것이다. 불교의 이러한 삶의 가치관이 활발하게 퍼져나갈 때 그 세상은 참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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