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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 읽기]존경하는 분을 잃지 않는 법

기자명 법보신문

『두 글자의 철학』김용석 지음/푸른숲

사회는 관계의 그물입니다. 그런데 관계라는 것은 언제나 상하좌우의 구별이 지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높은 지위에 있으면 사랑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고,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존경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배웁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품는 본능과도 같은 사랑의 마음을 강조합니다. 아랫사람이 수백 번 죽었다 깨어나도 윗사람의 내리사랑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알아챌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치사랑’은 무엇일까요? 아마 ‘존경’이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자식은 부모를 존경하고, 학생은 선생을 존경하고, 국민은 사회 지도층 인사를 존경하고, 신자들은 자기네 종교의 수행자나 성직자를 존경하는 것이 바로 치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엄밀하게 따져보면 내리사랑이 개인적인 차원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본능과도 같은 마음이라면 그에 반해 존경은 이성적 판단의 결과라고 이 책의 저자 김용석 교수는 설명합니다.

“존경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이 점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당연히’ 존경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기 쉽다. 아이는 어른을 공경하고 학생은 선생을 존경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물론 (중략)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관계가 자연의 법칙에 따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즉 그것의 자연적 당위성은 없다. 존경은 불변의 신화가 아니고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존경은 사회관계의 결과이다.”(이 책, p.235)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공동체에 폭넓게 이득을 가져올 수 있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일차적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며, 사람들이 그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뭔가 해 달라’고 하는 기대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뭐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이성이 마비되었고, 흐린 물을 정수할 여과기가 고장 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원로의 혜안입니다. 서로 자기 목표만 바라보고 추구하느라 극한으로 치고받던 사람들도 느린 걸음으로 혼란의 광장 한 가운데로 걸어 나와 숨차고 낮으나 간절한 목소리로 던지는 원로의 한 마디에 제 욕심에서 한 발짝 물러납니다. 원로는 그래서 존경을 받습니다.

지난 2월16일 한국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김수환 추기경께서 향년 87세를 일기로 선종(善終)하였다는 속보가 터지자 수많은 사람들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2월의 칼바람을 참아가면서 몇 시간을 기다렸다가 조문을 하고 나온 사람들은 ‘이 사회의 큰 어른을 잃었다’, ‘존경하는 분을 잃었다’라며 눈물을 훔쳐냈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퍽 외로워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럴 때 치유책이라면 존경하는 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겠습니다. 그리하면 그 분은 오래오래 내 안에서 사실 것이니까요.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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