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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자유 추구한 그를 총살하라

기자명 법보신문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박홍규. 프란시스코 페레 지음/우물이 있는 집

19세기 말의 스페인. 국가권력과 종교권력이 마지막 공모의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사람들을 억압하였고, 혼란의 틈새를 이용해서 기득권층은 어떻게든 제 몫을 더 챙기려고 온갖 술수를 짜내고 세력을 부리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 틈에서 대다수 민중들은 대물림해 온 가난과 핍박에 신물이 났지만 어쩌지 못한 채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지하고 불결하고 불행한 피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렇다고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서민들은 자신의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려면 복종하고 기도하고 참회하고 끝없이 갖다 바쳐야만 했습니다. “교육을 받아라, 저축을 하라, 경건한 삶을 살아라, 기도하라”라는 슬로건을 국가는 내세웠지만 이 역시 대다수 민중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육과 종교는 사람들을 더욱 종속적이고 비굴한 인간으로 몰고 갔으며, 저축의 장려는 서민들의 고혈을 짜내어 그들에게 복리(福利)로 돌리기는커녕 간단하게 배부른 자들의 주머니만 더 불렸습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는 없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학교가 바로 서야 한다는 데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사람이 바로 프란시스코 페레(1859-1909)입니다.
1901년 9월9일 그는 바로셀로나에 ‘모던 스쿨(Escuela Moderna)’이라는 이름의 학교를 세웠습니다. 당시 스페인 인구의 약 70%가 문맹이었으며, 의무교육은 허울뿐이어서 오두막 같은 교사에서 맨발의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은 아무런 대책이 없고 희망이 없는 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문을 연 모던 스쿨은 일체 시험을 치르지 않았고, 체벌은 절대로 용인하지 않았으며 상장을 주는 일도 없었습니다. 빈부귀천의 아이들이 함께 수업을 받았고 획일화된 교재가 없었으므로 선생님들의 고민은 매우 컸습니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대화하고 질문하고 토론하였습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는 품성의 소유자임을 강조하며 남녀공학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학교는 과학을 가르쳤지만, 절대로 종교교육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일선 교육현장에서 종교 주입 교육과 일부 교사들의 종교 강제 행위가 아무 의식 없이 자행되는 것을 볼 때 이미 백 여 년 전에 왜 그리도 페레가 학교에서 종교를 추방하려 하였는지 동감하게 됩니다.
모던 스쿨은 폐교 당하였고, 페레는 총살을 당하였습니다. 아마 그에게 죄가 있다면 자유를 추구하고, 생명에게 각자 고유한 가치가 있음을 사람들에게 설득한 것뿐이겠습니다. 국가와 종교권력은 1개 분대의 병력을 불러와 교육자의 가슴에 총알 세례를 퍼부었지만, 한 알의 씨앗이 되어 인간의 대지에 뿌려진 그의 정신은 서구 세계가 교육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대체 왜 우리 한국 사회는 페레가 그토록 만류하였던 부패한 교육으로 자꾸만 돌아가려고 하는 걸까요?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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