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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복전(福田)에 대하여

기자명 법보신문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부처님께서 한 번은 마가다국의 들판을 지나시게 되었다. 당시 이 나라는 16개의 부족 국가 중에서도 4개의 강대국 중 하나였다. 작물이 자라고 있는 논들은 둑을 경계로 질서정연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광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것을 보시고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저 잘 정비 된 마가다의 들판이 보이느냐?”
“예, 부처님.”
“아난다, 너는 저 들판과 같이 비구들의 가사를 만들어 보아라.”
“예, 부처님.”

부처님을 위시한 대중이 원래 머물던 라자가하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난다는 몇 벌의 가사를 만들어 부처님께 보여드렸다. 이것을 보신 부처님은 비구들을 모이라 하여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참으로 총명하구나. 내가 간단히 말하였는데도 천 조각들을 잇대어 잘 만들었구나. 잘라진 조각들을 기워 입으면 수행자에게 어울리며 아무도 탐내지 않는다.”

그러면서 부처님은 설법할 때나 마을에 나갈 때 입는 상가띠, 보통 때 입는 한 겹의 웃따라상가, 허리부터 아래에 입는 안따라와사 등도 조각을 이용해 만들도록 정하셨다. 이것은 조각을 하나도 붙이지 않는 가사를 입는 수행자들을 보고 “쾌락을 즐기는 장자 같다”는 비난에 대한 조처였다. 〈마하왁가 8편〉

가사(袈裟)를 “분소의(糞掃衣)”라 부르기도 한다. 화장터 같은 곳에 사람들이 버린 헌 천을 주워다 빨아서 가사를 지어 입었기 때문에 붙여진 말이다. 스님들이 가사를 수하기 전에 포갠 채로 머리 위에 잠깐 올리고서 외우는 “정대게(頂戴偈)”는 이렇다. “좋구나! 해탈복이여, 위없는 복전의로다. 내가 지금 이 가사를 머리에 이었으니 세세생생 가피를 얻어지어다(善哉解脫服 無上福田衣 我今頂戴受 世世常得被).”

가사가 논밭의 형태를 띤 것은 이처럼 일체 중생의 복 밭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땅의 의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제사문화가 뿌리 깊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제답(祭畓)”의 개념이 있었다. 세속에서는 마을제사인 당산제(堂山祭)같은 비용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제답에서 마련했고, 지역에 선행을 베푼 이를 기리기 위하여 출연금으로 제답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이런 논에는 비료로 분뇨를 주지 않는다. 제에 쓰이니까 정갈해야 한다는 뜻.

절집에도 제답이 있다. 스님들이 평생 아껴 모은 정재(淨財)를 털어 매입한 토지를 사중에 들여놓은 것인데, 사후에 자신의 제사에 쓰일 비용을 미리 적금해 놓는 셈이다. 무엇 하나도 대중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대중생활의 미덕이요 가풍이다.

송광사에서는 매 초하루에 “선사제(先師祭)”를 모신다. 내가 살던 때는 제사 전날이면 노스님 한분이 후원에 오셔서 빛바랜 명부를 펼쳐가며 위패를 써주셨다. 한 번은 시중을 들며 속지를 들여다 본 적이 있었는데, 간간히 이름 옆에 전답의 번지가 쓰여 있기도 했다. 제답으로 들인 필지의 기록이었다. 또 가을에 추수 운력을 나가면 “저 논이 oo 스님의 제답이다”는 말을 적잖이 들었던 그런 꿈같은 세월이 있었다.

온실의 비닐을 손보던 어느 오후의 중심에서, 긴 겨울을 난 수선화가 “저도 꿈처럼 피었답니다!” 하면서 수줍어했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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