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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묵 스님의 풍경소리]

기자명 법보신문

시왕탱화에 등장하는 온갖 지옥모습
다름아닌 인간이 지금 행하는 잔혹함

통도사를 찾아오신 분들을 안내하다보면 이따금 명부전에 이르러 시왕탱화를 설명하게 된다. 시왕탱화 속에는 여러 지옥들의 모습이 상세하게 묘사돼 있다. 가령 제1 진광대왕 탱화에는 험상궂게 생긴 옥졸이 죽은 사람을 관(棺)에서 꺼내는 모습, 죄인들이 굴비 묶듯 밧줄에 묶여 끌려가는 모습, 손이 묶인 채 칼을 쓰고 있는 모습, 몸에 쇠 징을 박는 모습 등이 묘사되어 있다.

다음 제2 초강대왕 탱화부터는 좀 더 무서운 장면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죄인을 묶어 놓고 죄인의 배꼽에서 창자를 끄집어내는 장면이 있고, 제3 송제대왕 탱화에는 죄인을 기둥에 묶어 놓고는 혀를 길게 쭉 빼 집어내 펼쳐놓고 그 위에서 옥졸이 소를 몰아 쟁기질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어 제4 오관대왕 탱화에는 화탕지옥, 즉 펄펄 끓는 기름 가마솥에 죄인을 집어넣고 삶는 장면 등이 그려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우리가 잘 아는 제5 염라대왕이다. 이곳 탱화에는 옥졸이 죄인의 머리카락을 꽉 틀어 움켜잡은 채 업경대(業鏡臺)를 들여다보게 하는 데 업경대 안에는 몽둥이로 소를 때려죽이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방아로 죄인을 찧는 장면도 묘사되어 있다.
 
다음 제6 변성대왕 탱화에는 날카로운 칼이 삐쭉삐쭉 솟아난 숲에 몇 명의 죄인들이 갇혀있고 칼 숲 밖에선 옥리들이 죄인들의 머리와 다리를 잡아 칼 숲으로 집어던져 넣는 장면이 나온다. 제7 태산대왕 탱화에는 형틀에 죄인을 세로로 매달아 묶어 놓고, 양쪽으로 옥졸들이 마주서서 톱으로 죄인을 반으로 써는 장면이, 제8 평등대왕 탱화에는 쇠로 만든 산(鐵山) 사이에 죄인을 끼워 놓고 압사시키는 장면이  그리고 제9 도시대왕 탱화에는 업칭(業秤)이라는 저울로 죄의 경중을 재는 장면과 차가운 얼음산 속에  죄인들이 갇혀 오돌오돌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이들이 있는 경우 착하게 살아야지 그렇지 않고 잘못 살게 되면 지옥에 가서 이처럼 고통을 받게 된다고 말을 하면 더러는 겁먹은 표정도 짓지만 조금 나이가 먹은 아이들인 경우는 못 미더워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그럴 때 써 먹는 방법이 있다. “너희들 고기 좋아하지. 너희들이 심심하면 군것질거리로 찾는 통닭을 튀기거나 바비큐 요리 할 때 돼지나 닭을 고치에 꿰어 불 위에 빙글빙글 돌리며 굽는 모습과 저 그림이 뭐가 다르지?”하면 금새 겁먹은 얼굴이 되고 조용해진다.

지옥, 알고 보면 그것은 깊은 땅 속에 있거나 빛도 들지 않는 철위산 깊은 골짜기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의 일상에서 다른 동물들을 대상으로 옥리가 되어 행하고 있는 것이다. 더러는 같은 인류를 대상으로 만들어 내고 있기도 하고.
캄보디아 앙코르왓트에 갔을 때였다. 가이드가 힌두 신화를 소재로 한 일층 외부 벽면에 부조들을 설명하는데 지옥 그림이 나왔다. 사람들을 개처럼 목걸이를 해서 끌고 가고, 가죽을 벗기고, 눈알을 뽑고, 뾰족한 가시가 위로 향한 나무 위에서 타고 내려오게 하고, 불에 태우는 등 무시무시한 장면 들이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크메르루주가 이곳을 근거지로 하고 있을 때 그들이 끌고 온 사람들에게 그 그림과 똑 같은 장면을 실행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탱화에 등장하는 지옥 그림은 인간이 현세에서 행하는 잔혹함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이렇듯 우리 스스로는 그리하면서 그런 세계가 있음을 대부분 믿지 않는다. 약간 믿더라도 절 또는 성당 등에서 몇 가지 행한 것을 믿고 자신은 그런 상황을 요행히 피해갈 것이라 생각한다.

해서 이 땅에 각 종교가 내세우는 상징물은 하늘 높이 솟고 있지만 도덕성은 떨어지고 사회는 윤기가 없다. 매 순간 자신과 주변의 삶을 오롯이 살피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법구경』 「지옥품」에 나오는 말씀을 읽어본다. “두려워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해서, 그릇된 소견을 믿어 나아가면 죽어 저승에서 지옥에 떨어진다.”

정묵 스님 통도사 포교국장manib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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