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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주문

기자명 법보신문

『샬롯의 거미줄』/ 엘윈 브룩스 화이트 글 /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화곤 옮김 / 시공주니어

새끼 돼지 윌버는 무녀리입니다.
무녀리는 한 어미의 태에서 나온 새끼들 중에서 제일 먼저 나온 까닭에 대체로 비실비실한 녀석을 말합니다. 키워봤자 품만 들고 먹이만 축낼 뿐인지라 도살당하기 직전에 윌버는 천만다행으로 죽음을 면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윌버의 삶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인은 크리스마스에 베이컨과 햄으로 만들기 위해 그때까지 잘 먹여 살을 찌우겠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비극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그저 속수무책으로 오돌오돌 떨 뿐인 윌버에게는 든든한 친구 암거미 샬롯이 있었습니다. 샬롯은 친구를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며 수를 짜냅니다. 그건 바로 거미줄을 이용해서 멋진 문구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밤새 거미줄을 짜고 그 가운데에 ‘대단한 돼지’라는 글자를 그려놓았는데 이것을 발견한 농장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거보라고. 나는 줄곧 우리 돼지가 특별히 좋은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그의 말에 이웃 사람은 맞장구를 칩니다. “맞아요. 전 항상 저 돼지를 눈여겨봤다고요. 정말 대단한 돼지예요.”한 푼의 값어치도 없던 무녀리 새끼 돼지 윌버는 순식간에 ‘대단한 돼지’가 되었고, 온 동네 사람들은 ‘대단한 돼지 윌버’를 보러 몰려들었습니다. 대단한 돼지가 슬슬 지겨워질 때가 되자 샬롯은 ‘근사한 돼지’라는 글자를 거미줄로 짜서 걸어두었습니다. 그리고 식상해지려 하자 이번에는 ‘눈부신 돼지’라고 거미줄을 짰습니다.
“난 결코 근사하지도 눈부시지도 않아.”

자신을 잘 아는 윌버는 이렇게 고백하지만 샬롯은 말합니다.
“나한테는 네가 가장 근사한 돼지야. 바로 그게 중요한 거야.”
샬롯의 거미줄 글자는 윌버를 변화시킵니다. 결코 대단하지도 근사하지도 않은 무녀리 돼지 윌버는 이제 대단하고 근사한 돼지가 됩니다. 그리고 눈부신 돼지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그가 처음부터 대단하고 근사한데다 눈부시기까지 한 돼지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지내다가 어느 덧 그들의 우정이 막을 내릴 때가 되었습니다. 품평회에 나갔지만 메달을 따지 못한 윌버는 또다시 도살의 위기에 놓이게 되고 구원투수 샬롯은 죽을힘을 다해 ‘겸허한 돼지’라는 글자의 거미줄을 짜고 5백 개가 넘는 알을 낳은 뒤에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나는 세상을 살 가치가 없는 벌레만도 못한 목숨이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면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난 대단해’라고 자꾸 되뇌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그런 거짓말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주문이 되어 어느 순간 나는 정말로 대단하고 근사하고 눈부시기까지 한 존재가 되고, 나아가 5백 마리가 넘는 친구의 아이들을 훌륭히 독립시킨 윌버 같은 힘이 자신에게도 샘솟을지 누가 압니까.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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