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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61. 허공으로 통하는 길

기자명 법보신문

길 없는 길이기에 누구나 갈 수 있다

허공에는 자취가 없는데
바깥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그는 수행자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고
깨달은 사람에게는 흔들림이 없다.
                                     - 『법구경』


『법구경』 게송 254번과 255번은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로 유명한 수밧다(숩바다) 비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밧다는 방랑의 수행자라고 한다. 혼자서 산야에 떠돌면서, 때로는 외도의 스승을 찾아 혼자서 수행하곤 했다. 그런데 그는 많은 스승을 찾아가서 질문해도 만족스런 대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중, ‘오늘 밤 삼경에 사문 고따마께서 마지막 열반에 드실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수밧다 비구는 자신이 평소에 갖고 있던 의심을 풀 수 있는 기회를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급히 부처님을 뵈러 달려간다.

그러나 부처님의 곁을 지키고 있던 아난존자는 부처님이 피로하실까 염려하여 수밧다 비구를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이를 지켜보시던 부처님은 그를 가까이 들어오게 하시고 질문을 하도록 허락하신다. 거해 스님의 편역에 의하면 수밧다 비구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허공으로 통하는 길이 있는가, 둘째 부처님의 법 이외에도 성비구(聖比丘)가 나오는가, 셋째 오온은 영원한가를 물었다고 한다. 이에 부처님께서 위의 게송으로 이 수밧다 비구의 질문에 답을 하셨다. “허공에는 길이 없고, 부처님의 가르침 이외에는 성스러운 비구가 나오지 않으며, 또한 조건을 지닌 것으로서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라고 답을 하셨다고 한다. 수밧다 비구는 아나함과를 성취하였고,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

온 우주에 특별한 길은 없어

우리는 정해진 길을 따라서 목적지에 도달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진리에 나아가는 길은 그렇게 평탄한 길이 아니다. 온 우주 허공에 특별히 길이 있을 리가 없듯이 말이다. 관세음보살의 보문시현(普門示現)이나 선어록(禪語錄)에 나오는 대도무문(大道無門)이 특별한 길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모든 모양이 다 관세음보살의 화현(化現)이며, 온 우주 전체가 어디에고 통하는 큰길이 되는 것이다.

허공에 길이 없기 때문에 허공 그대로가 길이며 관음의 자비에 한계가 없기 때문에 모두가 내왕할 수 있는 보문인 것이다. 이것이 종교가 지양하는 모두에게 열린 길일 것이다. 자신으로부터 온 우주가 그대로 통로가 되어 이어져 있는데, 안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바깥 허상에 마음을 빼앗기면 참다운 수행자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진실한 수행자는 오직 부처님 제자인 성비구(聖比丘)에게서만 찾을 수 있다는 부처님의 강한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그러한 성비구들은 항상 진리의 한 가운데서 서로 관계 속에 존재하는 연기의 현상은 영원한 것이 없다고 하는 이치를 철두철미 깨달은 자이다. 연기의 무상함을 온 몸으로 체달한 사람은 어떠한 변화에도 동요됨이 없이 열반을 향하여 나아갈 뿐이다. 이 세상에 펼쳐지고 있는 생로병사와 우비고뇌(憂悲苦惱)가 다 이 연기의 현상으로서 생성되고 소멸해 감을 진리로서 깨달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현상은 우리를 항상 어지럽게 흔드는 바람과 같다. 세상의 어떠한 바람에도  동요됨이 없는 경지를 보살십지(十地)의 제8부동지(不動地)보살이라고 한다. 보살이 제8지에 오르면 이제는 더 이상 뒤로 물러가거나 눈앞에 벌어지는 현상을 따라서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제8지보살을 불퇴전(不退轉)보살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이 불퇴전보살은 연기의 법을 관찰하고 참다운 깨달음인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무생법인이란 태어나고 죽어감에 대한 일체의 동요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연기하는 모든 현상은 공(空)이며, 공한 모습이 곧 실상(實相)이라는 진리를 체득해서 생멸에 동요됨이 없이 안주하는 보살의 경지를 의미한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생멸(生滅)하는 한 가운데서, 오히려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실상의 참모습을 확신함과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생멸 속에 엄습해 오던 모든 근심과 슬픔을 일시에 놓아버리는 깨달음의 상태에 도달한다. 이 깨달음을 무생법인 이라고 하고, 제8지에 오른 부동지의 불퇴전보살만이 증득하는 경지이다.

생멸 있기에 깨달음도 있어

이는 눈앞에 벌어지는 작은 일들에 울고 웃는 우리 중생들에게는 요원하게 들리는 성자(聖者)의 경지로 인식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이익과 불이익에 요동치고 칭찬과 비난에 낮과 밤을 지새우고 있다. 물질과 권력에 나약해 질대로 나약해진 우리들에게 부동지보살의 경지는 요원한 남의 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불교는 자비의 종교이다. 우리들의 삶과 관계없는 것이라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오시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부처님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세상에 출세하셨고, 보살은 바로 중생이 부지런히 수행하여 이룩한 거룩한 모습이다. 생사윤회의 요동치는 파도를 넘어서 비로소 무생의 법인을 깨달은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통하여 중생은 희망을 얻고, 그 가르침을 실천함으로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중생이 번뇌를 털고 일어나서 지혜의 완성자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변화무쌍한 생멸 속에서 동요됨이 없는 불생불멸의 경지를 향하여 묵묵히 노력해 볼일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믿는 우리는 길 없는 허공을 향하여 온 허공이 길이 되도록 허공 길 찾아서 길을 떠나야 한다.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조계사 원심회 김장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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