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을 생각한다
종교개혁을 생각한다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04.08.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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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는 수선결사가 있었고 백련결사가 있었다. 그리고 현대에는 봉암결사가 있었다.

우리 불교사에 있어서 이런 결사들을 서양기독교사에 비교해보면 당연히 종교개혁이 떠오른다. 종교개혁의 시작은 독일에서부터 이다.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교황권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던 16세기 초엽의 독일은 여러모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과세권과 성직임명권을 둘러싼 교황청의 극심한 부패, 교리에는 눈이 먼 성직자들의 반신학적 행태. 중세에서 근세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상업 도시들은 무분별한 교황청의 간섭 아래 경제는 침체상태에 빠져들었다.

여기에 마르틴 루터가 있었다. 어거스틴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일하고 있던 루터는 1517년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95개조의 항의문 발표, 세속권에 대한 교황권의 우월성은 근거가 없다는「독일의 기독교인 귀족에게」라는 논문 등을 통해 교황권의 부패한 행정과 각종 부정한 성직임명 관행 및 무리한 과세제도에 대한 철폐를 주장하였고 특히 지나치게 부담이 되고 있는 각종 종교의식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독일에서의 종교개혁은 쯔빙글리와 재세례파, 칼뱅 등을 통해 계속 이어져 새로운 기독교사를 이루게 된다. 물론 그 후에도 기독교의 부패와 이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차원의 종교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여전하였고, 이런 끊임없는 자기 개혁과 열린 사고가 오늘날의 기독교를 지탱하는 중심이 되고 있음은 분명한 일일 것이다.

지난 해 우리 나라에서는 교회 세습을 둘러싼 논쟁이 심각하게 벌어졌었다. 이 논쟁은 한편으로는 교계의 문제점을 드러낸 불편한 일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습의 정당성을 둘러싼 진지한 성서적 해석과 한국기독교의 토착화 논쟁에까지 이어져 살아 움직이는 기독교계의 한 정형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기도 하였다. 물론 일부 배타적인 기독교계에서 자행되는 불상이나 단군상 등에 대한 훼불과 훼손소동, 지나친 물량주의와 개별교회주의, 갈수록 권력화 되어 가는 성직에 대한 문제점은 기독교계에서도 여전히 지적된다. 하지만 여기에 반대하여 목사의 권력을 철저히 분산시켜 교회 내에서의 민주화를 꾀하는 움직임이 있는가 하면, 교회건물 조차도 두지 않고 일요일날 사용하지 않은 학교 대강당을 빌려 예배를 진행하는 교회도 늘고 있다. 비밀스런 회계관행을 탈피하기 위해 인터넷 등으로 교회의 회계보고서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교회까지 있다. 어린아이까지 포함하여 신도 수는 1천8백명인 남산에 있는 한 교회는 공식사이트에 현금수익에서부터 수십 가지에 이르는 지출항목까지 상세하게 밝혀 놓았다.

기독교계의 문제점이 그대로 불교계의 문제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계의 새로운 종교개혁의 필요성이 불교개혁의 필요성으로 이어지는 것 또한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인의 종교관, 한국에서의 종교단체의 특성 등은 분명 나름대로 유사한 점이 있다. 따라서 기독교계에서 지적되는 여러 문제점이 때로는 불교계에서의 문제점으로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유사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물론 불교계에서도 여러 갈래의 개혁작업은 시도되고 있지만 무리한 불사관행, 숭유억불 시대에 형성된 지나친 효윤리 사상이 지금에까지 이어져 은사스님에 대한 과도한 예우와 추모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물량주의와 지나친 세속주의, 비밀스런 회계관행과 교직임명권을 둘러싼 소란 등은 오늘날의 기독교계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불교가 시작된 지는 4300년이 넘었고, 기독교가 시작 된지는 2000년을 넘어섰다.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온 지는 1600년이 넘었고,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는 200년이 갓 넘었다. 진리란 영원하여 변함이 없으나 진리를 둘러싼 외피에는 새로움이 필요하다. 새로움은 외피가 오랠 수록 필요성이 더하다.



최재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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