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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63. 입을 단속하는 이유

기자명 법보신문

말보다 실천 우선이 불교 참 모습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다.
미움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고요한
그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 『법구경』

부처님 당시 제자 중에 말썽을 일으키기로 유명한 여섯 명의 비구와 여섯 명의 비구니가 있었다. 이들은 몰려다니면서 승가교단에 많은 문제를 불러 일으켰고, 이 여섯 무리 비구비구니(六群比丘比丘尼)들이 문제를 일으킴에 따라서 초기 교단의 생활지침서인 『율장』의 바라제목차 항목도 거의 제정되었다고 말할 정도이다.

위의 게송이 설해진 인연도 이 여섯 무리비구가 몰려다니면서 어린 사미들을 호통치고 힘으로 억압하면서 소란을 피우고 있었는데, 이를 전해 들으신 부처님이 여섯 무리비구를 꾸짖으신 것이 게송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경전에 등장하는 여섯 무리비구는 그야말로 ‘트러블메이커’인 샘이다. 여기에 비구니 여섯 명도 따라다녔다고 하니 가히 볼만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때때로 불러서 꾸중을 하시고 계율의 항목을 만들어서 지키도록 야단을 치시는 일 외에는 이 죄업중생을 다스릴 길이 없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죄업으로 착한 법을 받아 지니지 않는 중생에게는 ‘묵묵히 내쳐버리는 것으로 대처하라( 對處)’고 가르치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거룩한 법이 통하지 않고 말싸움으로 소란만 더하기 때문이다. 영리한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속력을 낸다고 한다. 수행자의 지혜는 겉으로 나타난 위력이나 사나운 말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움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고요하고 남을 또한 참으로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의 언행만이 지혜로운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지혜는 고요한 언행에서 드러나

이어지는 게송은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도(道)를 실천하는 사람은 아니다. 들은 것이 적더라도 직접 체험하고 진리에 벗어나지 않음이 도를 실천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이 게송을 설하게 된 에꾸다나스님은 육군비구와는 정반대로 수행에 전념하신 분이다. ‘에꾸다나’란 에카(eka=하나, 1의 뜻)와 우다나(udana=감흥어, 자설경의 뜻)이다. 이 에꾸다나스님은 단 하나의 부처님 가르침인 게송만을 겨우 외우면서도 기쁨에 넘쳐서 항상 스스로 외우고 감동하였고, 숲속의 신들과 모든 생명에게 들려주면서 조용히 수행하고 있었다.

스님은 초하루와 보름날은 언제나 환희심으로 단 하나 기억하고 있는 게송을 외우고 자신의 수행을 되돌아보면서 경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 숲의 신이나 천신들도 다 함께 스님의 게송을 찬탄하면서 환희로움에 빠져들곤 했다. 이러한 소문이 퍼져서 법문을 잘하고 경전을 많이 외우는 훌륭한 큰 스님 두 분이 숲에 오셔서 능숙한 어조로 법문을 설하셨다. 그러나 천신이나 숲의 신은 아무런 감동도 없이 조용하게 있어서 두 큰 스님을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신 부처님께서 위의 게송을 설하시면서 경전을 줄줄이 외운다고 해서 거룩한 법사(法師)가 되는 것이 아니며, 참으로 고요한 마음으로 진리의 기쁨에 스스로 몰입되어 법을 설할 때, 천신도 숲의 신들도 함께 기뻐하는 것이 참다운 설법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나라 출가수행자 교육의 첫 번째 교과서인 야운비구의『자경문』제3에 ‘입으로 많은 말을 하지 말고 몸은 경거망동하지 말라(口無多言 身不輕動)’는 경책문이 있다.

몸을 가벼이 움직이지 않으면 어지러움을 쉬고 선정의 고요함을 얻게 되며, 입으로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면 어리석음을 떨쳐버리고 지혜를 이루게 된다(身不輕動則息亂成定 口無多言則轉愚成慧)는 것이다. 또한 ‘모든 존재의 참 모습은 말을 떠나서 있고, 진리는 움직임이 아니다(實相離言 眞理非動)’라고 가르치고 있다. 입으로 많은 말을 하면 화를 불러오게 됨으로 반드시 입을 단속해야 하며(口是禍門 必加嚴守), 몸은 재앙의 근본이니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身乃災本 不應輕動)는 것이다.

종교조차 말장난 하는 세상

부처님께서 설산에서 6년을 부동의 자세로 지내신 선정(禪定)의 수행전통을 이어가고, 달마대사가 중국 소림사에서 9년을 면벽(面壁)하신 무언(無言)의 참선수행을 지켜가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근세의 도인이셨던 만공선사께 불교잡지를 만들기 위하여 책머리에 한 마디 말씀을 써 달라고 부탁을 하니까, 즉석에서 무궁화 꽃을 붓처럼 말아서 먹을 찍어가지고 ‘참 말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眞言不出口)’라고 써주셨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요즈음은 말도 너무 많고, 많은 말에 따라서 경거망동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종교 케이블 방송을 틀고 보면 너무나 잘 지어진 건물의 화려한 단상 앞에 서서 기름을 바른 머리를 빗어 넘긴 어느 종교지도자가 입에 거품을 물고 타 종교를 우스개처럼 말하면서 설교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제는 종교의 세계까지도 서로의 존중을 가르치는 진실함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모든 것을 다 입으로 말해서 말장난처럼 표현해버리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전통을 따라서 말보다는 실천을, 형상보다는 마음을,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기보다는 낙오자의 아픔과 생로병사의 진실을 함께 음미하면서 조용히 명상하는 종교 본래의 모습을 지켜가기를 염원한다. ‘참 말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만공선사의 말씀에 향기를 느끼기 때문이다.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조계사 원심회 김장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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