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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지성] 9.T.S. 엘리엇-박경일 경희대 교수

기자명 법보신문

중도와 연기 속에서 세상 바라본 시인 철학자

 
생전의 엘리엇 모습.

성불한 불타는 최초의 설법에서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배워야 한다. 여래는 바로 이 중도의 이치를 깨달았다. 여래는 그 길을 깨달음으로써 열반에 도달한 것이다”고 설했다.

불타의 교의를 가장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체계화한 제2의 불타 용수의 「중론송」에 의하면, 모든 존재는 뭇 인연(관계)에 의해 존재하며, 인연에 의해 생긴 것은 그 자체의 자성을 갖지 못한다, 때문에 인연으로 생겨난 것을 불교에서는 공하다고 말한다[因緣所生法 我說卽是空]. “인연으로 생겨난 모든 것을 공하다고 우리는 말한다./그것은 또한 가설(假說)된 것이요, 이것이 즉 중도이다.”

기독교 시 통해 오히려 ‘중도’ 노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20세기 최고의 장편시 「황무지」(1922)의 시인으로 194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철학자 출신의 유럽주의 기독교 시인-비평가 T.S. 엘리엇(1988~1965)은 그의 철학과 문학에서 불교의 연기설적, 중도적 성향을 보여준다. 엘리엇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견해들을 동시적으로 수용·비판하는 다중조망주의, 제설통합주의, 절충주의이다.

엘리엇은 베르크손, 로이스, 퍼스, 브래들리를 비롯, 제임즈, 러셀, 화잇헤드, 비트겐슈타인, 조아킴, 콜링우드 등 20세기 철학계의 거물들의 직·간접적인 지도 또는 영향을 받으며 철학수업을 하고 글을 썼다. 엘리엇은 그가 접했을 가능성이 있는 거의 모든-더러는 정반대적인 학파에 속하는-철학 학파 또는 범주와의 관련성이 지적되었다. 엘리엇의 다양한 철학적 입장들은 관념론자, 절대주의자, 일원론자, 실재론자, 실용주의자, 플라톤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 베르크손주의자, 하이데거적 현상학자-해석학자, 데리다적 그라마톨로지스트 등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엘리엇은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 학사, 석사 과정을 마치고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에서 1년 동안 당시 전 세계의 지성인들을 매료시키던 베르크손의 철학강의를 수강한 뒤, 1911~14년 하버드 대학원 철학과에서 공부하고, 1916년 영국의 현대 관념론 철학자 F. H. 브래들리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 ‘미국 철학자들의 대부’ 로이스로부터 ‘전문가의 작품’으로 격찬 받았다.(그러나 박사학위 취득을 위한 구술시험에 참석치 않아 학위를 취득하지 않았다.)

엘리엇의 철학 공부는 교과과정의 1/3 이상이 인도학·동양학 공부에 할애될 정도로 동양에 크게 기울어져 있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 뒤에 공자, 예수 뒤에 불타’를 놓는 동서비교적 사유에 친숙했고, 또 폭넓은 지적 편력을 통해 어느 하나의 이론과 교의에도 안주·집착하지 않는, 다양한 견해들에 대한 평생의 열린 자세를 훈련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도 철학자들의 미묘함들은 대부분의 가장 위대한 유럽 철학자들을 학동(學童)들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엘리엇은 쓴 바 있다. 또 엘리엇은 유럽에 대한 브라흐만과 불교 사상의 영향은 쇼펜하워, 하르트만, 도이센 등의 경우에서처럼, 대체로 ‘낭만주의적 오해를 통해서’였다고 비판했다. 엘리엇은 칠레의 한 여류 시인에게 불교는 자기 작품에서 평생의 영향으로 남아 있으며, 「황무지」를 쓸 때 자신은 거의 불교도가 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엘리엇은 또 자신은 불교도는 아니지만, “몇몇 초기의 불교 경전들은 구약성서의 어떤 부분들처럼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 바 있으며, “오래 전 나는 고대인도 언어를 공부했으며, 그 당시 나는 주로 철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시도 다소 읽었다. 그리고 내 자신의 시가 인도 사상과 감수성의 영향을 보인다는 것을 나는 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는 또 자신의 종교적 철학적 신념들과 다른 인도의 종교적 철학적 신념들을 공부할 기회를 가졌던 것을 ‘매우 감사’하고 있다. 인도의 텍스트들과 사상들은 이처럼 엘리엇에게 ‘평생의 중요성’을 가졌다.

엘리엇의 철학과 문학의 핵심 키워드는 ‘관계’이다. 엘리엇의 시종일관한 의식은 관계성의 의식이다. 엘리엇에게는 어떤 사람 또는 객체도 관계들의 얽힘에 의해서만 가치를 가질 수 있다. 하나의 실체는 그 자체로서 정확하게 고정될 수 없다. 그 자체로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다른 대상들에 대한 중첩하는 관계지어짐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같은 인식론적 모델에 의하면, 개인 또는 사물은 그 자체로서 자족·자존하는 존재성을 갖지 못하고, 다른 것들과의 관계적 얽힘에 의해서만 그 의미를 갖는다. 엘리엇은 학위 미취득 철학박사학위 논문에서 “자아는 하나의 구축물이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이 “자아는 하나의 세계에 의존하며 이 세계 역시 자아에 의존한다.” 자아와 세계는 본래적인 자성(自性)을 갖지 못하고 상호의존적이다. 엘리엇의 관계(론)적 사유는 칸트적인 “물-자체”에 대한 가장 급진적 비판이다.

자아와 세계는 상호 의존적 관계

학위논문을 완성한 뒤 3년 후에 엘리엇은 최초이자 그의 문학 생애의 가장 핵심적 에세이인 「전통과 개인 재능」(1919)에서 “어떤 시인, 어떤 예술가도 혼자서는 완전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그의 중요성, 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죽은 시인들과 예술가들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다”고 쓰게 되며, 그후 「비평의 직능」(1923)에서 “나는…문학을…개인들의 문학작품들의 집성으로서가 아니라, ‘유기적 전체들’, 일련의 체계들로 생각했으며, 개개의 문예 작품들이나 개개의 예술가들의 작품들은 이 체계들과의 관계 속에서, 오로지 이 체계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했다”고 썼다. 엘리엇에 의하면, 문학 작품·작가는 자족자존하는 자성을 갖지 못한다.

엘리엇의 철학 에세이들과 문학적 산문들은 보편적 타당성을 주장하는 이론들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보여준다. 철학 행위를 통해 “우리가 습득하였을 지혜는…책의 일부가 아니라, 여백에 연필로 씌여진다.”고 그는 철학 에세이 『진리의 정도』에서 썼다. 엘리엇에 의하면, 하나의 철학적 이론은 ‘아무런 적극적 결과도 내놓지 않는’ 한에서만 ‘적극적 미덕’을 갖는다. 엘리엇은 또 키츠는 이론을 갖고 있지 않지만 철학적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고 찬양하면서 자신은 물론 일반적인 이론을 갖고 있지 않다고 천명했다. 그는 또 자신은 시의 정의를 시도하지 않는다면서, 그 이유는 정의가 제한, 배제, 편견을 수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엘리엇은 무엇보다도 고정하고 확정하는 것을 경계했으며, 도그마를 경계하고, 궁극적인 것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의를 기피했다. 엘리엇은 『전통과 개인 재능』에서 ‘영혼의 실체적 통일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이론’과 관련된 시점(視點)을 공격하고, 이보다 앞서 박사학위 논문에서 “형이상학적 체계들은 로켓처럼 날아올랐다가 막대기처럼 내려오게끔 운명지어졌다”고 쓴 바 있다. 그는 문자를 세우지 않되[不立文字] 문자를 떠나지도 않음[不離文字], 그리고 무설(無說)을 가르친 불교적 교의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수보리야, 여래께서 설한 바 법이 있느냐?”는 불타의 질문에 수보리는 “여래께서 설하신 바 법이 없습니다” 하였다.

‘공’의 철학에는 기본적으로 정해진 교의가 없다. 중관파는 스스로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는다. “나에게는 주장이 없다”고 용수는 그의 저서 「이론의 배척」에서 말하고 있다. 중생의 근기에 따라 다양한 설법을 하는 불교의 방편설법들과 비유들은 그것들이 보편적 거대담론 또는 메타서사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예들이다. 불타는 “공도 역시 공”(空亦復空)이라고 가르친다.

엘리엇은 「네 4중주」에서 “나는 여기, 중도에 있다”고 썼다. 헤이에 의하면, 불교에 있어서 중도는 존재 또는 비존재와 관련된 ‘모든 고정된 공식들’을 포함하여, 모든 ‘패턴들’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성취되는 ‘해방의 길’이며, 불교의 중도 추종자들은 변화하는 형식들과 공 간의 관계에 집중한다. 같은 시의 ‘비존재와 존재 사이의/제한의 형태’는 바로 이같은 중도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헤이는 엘리엇의 1925년 이전의 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시들 뒤에 감추어진 ‘비의적 진리’가-만일 있다면-어떤 의미에서는 유태-기독교적인 것이 아니라, 인도(印度)적, 불교적인 것들이라는 사실에 직면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베일을 쓴 누이는 기도하실 건가,/어둠 속을 걷는 이들을 위하여, 당신을 택하고서 거역하는 이들을 위하여/계절과 계절, 시간과 시간 사이, 시각과 시각 사이,/말과 말, 힘과 힘 사이에 갈림길에서 찢겨진 이들을 위하여,/어둠 속에서 기다리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실 건가, 베일을 쓴 누이는/물러가지도 않고 기도할 수도 없는/문간의 아이들을 위하여?/선택하고서도 거역하는 이들을 위하여”라고 엘리엇은 「성회수요일」(1930)에서 쓰고 있다. 엘리엇의 가장 기독교적인 시로 평가되는 이 시의 이 간절한 기도는 어떤 하나의 체계와 이론과 신앙에도 안주할 수 없는 엘리엇의 지적 고뇌를 보여준다. 그것은 오히려 한편의 ‘중도의 노래’이다. 엘리엇의 1925년 이전의 시들에 감추어진 비의가 있다면 그것은 인도적 불교적인 것들이라는 헤이의 견해는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엘리엇의 어떤 시가 1930년에 발표된 이 시보다 더 인도적, 불교적일 수 있겠는가.

평소 불교-힌두교 경전 탐독

엘리엇은 다시 「네 4중주」에서 “회전하는 세계의 정지점에. 육(肉)도 아니고 탈육(脫肉)도 아니고,/어디로부터도 아니고 어디를 향하여도 아니다; 정지점에, 그곳에 무도가 있다,/그러나 억류도 아니고 움직임도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고정이라 부르지 말라,/과거와 미래가 모이는 곳. 어디로부터의 움직임도 어디를 향한 움직임도 아니고,/상승도 아니고 하강도 아니다.”고 쓸 때, 불교의 중도 사상과 니르바나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엘리엇 시의 절정으로 손꼽히는 이 ‘정지점’(靜止點)은 그러나 ‘고정’되지 않고, ‘억류’도 ‘움직임’도 아니다. 엘리엇은 또 같은 시에서 “그대가 알지 못하는 것에 이르자면/그대는 무지의 길로 가야 한다./그대가 소유하지 않은 것을 소유코자 한다면/그대는 무소유의 길을 가야 한다./그대가 아닌 것에 이르자면/그대가 있지 않은 길로 가야 한다/그대가 알지 못하는 것은 그대가 아는 유일한 것이고/그대가 소유하는 것은 그대가 소유하지 않은 것이고/그대가 있는 곳은 그대가 있지 않은 곳이다.“고 쓰고 있다. 그것은 가히 ‘길 아닌 길’, ‘자유로이 봄’[觀自在]에 대한 비전이 아니겠는가? 

경희대 박경일교수


박경일 교수
경희대 영어학부 교수로 한국동서비교문학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T.S. 엘리엇과 불교」, 「T.S. 엘리엇의 중도(中道) 사상: 불교적 영문학 읽기를 위한 방법서설」,「불교와 포스트모더니즘」,『니르바나의 시학: 회전하는 세계의 정지점 연구』,『영문학과 동양사상』,『문학과 철학: T.S. 엘리엇의 철학적 계보학』등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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