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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별이 지다

기자명 법보신문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어느 한 신이 한쪽에는 빨간색, 다른 한 쪽에는 파란색을 칠한 모자를 쓰고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날, 들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 물었다. “파란 모자를 쓰고 다니는 신을 보았는가?” 듣고 있던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아닌데, 신은 빨간 모자를 쓰고 있었네.” 두 사람은 이렇게 입씨름을 했다.

그런데 그 신은 한 번만 오고 간 것이 아니었다. 여러 차례 길을 오가면서 모자를 자꾸 돌려쓰는 바람에 본 사람마다 견해가 달랐던 것이다. 두 사람은 그 고을의 왕에게 누구 말이 맞는지 재판을 부탁하러 갔다. 그 자리에 신이 다시 나타나 말했다. “내 탓이다. 내가 그렇게 했다. 내가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했느니, 싸움을 붙이는 게 내 취미이니라.”

아프리카 대륙의 나이지리아에 전해지는 장난꾸러기 신 ‘에드슈’의 이야기다. 싸울 일이 아닌데 싸우는 인간세의 속성을 잘 말해준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투쟁은 위대한 창조자’라 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만족하고 맘을 놓으려는 순간, 이 장난꾸러기 신이 끼어들어 난장판을 만들어버리기 일쑤다. 세상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다투면서 활로를 모색하기 때문에 이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면 삶은 영원히 미궁 속으로 얼굴을 감춰버리고 만다.

부처님이 출가를 결심하게 된 동기는 성문 밖으로 나가서 보게 된 인간의 생로병사였다. 종교에 천재적인 인물들은 한 결 같이 세상의 모든 일을 남의 것으로 보지 않고 나의 잠재적인 모습으로 아프게 보는 공통점이 있다. 남의 삶에서 ‘나’의 삶을 인식하는 것, ‘나’와 남은 둘이지만 살고 있는 삶은 하나임을 깨달아야 좋은 세상이 열린다.

19세기 인도의 영적 스승이었던 라마크리슈나는 이 세상을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에 비유하곤 했다. 그는 ‘왕궁’을 ‘큰 여관’이라고도 했다. 만사 무상한데, 이 좁은 땅에서 한 하늘을 이고 사는 반만년 역사의 한 핏줄 한 민족 간에 무엇이 그렇게도 끝장을 봐야 할 만큼 맺힌 원한이 많단 말인가.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모자 색깔’을 놓고 극렬하게 표출되는 애증의 불길이 위험하기만 하다.

권력은 자기 질시를 이겨내지 못하는 순간부터 무너져 내린다. 잠시 머물다 가는 ‘왕궁’이라는 ‘여관’의 같은 방을 물려주고 물려받은 사이에, 누가 봐도 명백한 ‘모멸감 안기기’가 그토록 집요하게 벌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이 지경이 되도록 방관했던 이 사회 지성의 수준이 부끄럽기만 하다.

이런 게 때 늦은 사랑의 아픔일까? 그분은 소멸됨으로써 영원성을 획득하는 길을 나서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애절하고, 떠난 뒤에야 서로 그토록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았기에 모두의 눈물이 마르지 않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처럼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다. 떼어 놓을 수 없는 밤과 낮처럼, 한 차원의 두 모습이다. 건국 이래 초유의 국민적 추모열기가 괜한 것이 아니다.

이 뜨거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분을 어느 세상인들 쉬도록 가만 두겠는가. 다시 태어나도 가난한 민중을 떠맡아야하는 고된 길을 갈 것이고, 민중은 언제나 그런 위인을 갈구하기 때문에 그의 삶은 꽃이 되고 별이 되어 모두의 가슴 가슴마다 은하수로 흐를 것이다. 빠른 판단으로 적극적으로 추모에 임한 불교계에 대한 격려의 말을 많이 들었다. 모처럼 할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랄까…. 유족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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