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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묵 스님의 풍경소리]

기자명 법보신문

미망과 아집에 사로잡힌 나를 돌아보고
뱀이 허물 벗듯 벗어내야 행복 잃지 않아

송광사 강원에 살적 이었다. 동안거 결제기간에 십육국사 진영을 모신 국사전에 밤새 도둑이 들어 세 분 국사의 진영만 남는 일이 있었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방장 스님의 상당법문 시간이었다. 방장 스님께서는 법상에 오르셔서 주장자만 세 번 치시고 한참을 그저 좌정해 계시다가 다시 주장자만 세 번 치신 후 내려 오셨다. 그 때 그저 어렴풋이 방장 스님의 뜻을 짐작해 보았을 뿐, 깊이 느끼지는 못했었다. 이제 그 분을 고인으로 보내며 방장 스님의 심정을 깊이 느껴보며 지면을 텅 빈 채 남겨두었으면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겐 방장 스님처럼 무언으로 뜻을 전할 힘이 없으니 나름의 소회를 몇 자 적어본다.

그 분처럼 살아서나 떠나서나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남겨준 분은 드물지 않나 생각된다. 그 중 하나가 우리 모두에게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평검사가 면전에서 견해를 달리해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지면과 인터넷을 통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내 생각을 펼 수 있다는 것. 자욱한 최루탄 가스를 마시지 않아도 되는 것. 개개인의 인권이 소중하다는 것. 관행일지라도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는 것 등등.

우리는 이런 일들이 역사의 진보 속에서 으레 얻어지는 것이었고, 당연히 그러한 일들이 지속될 것이라 보았지만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큰 노력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 살핌과 깨어남의 수행을 통해 지혜가 있는 현명한 사람은 사소한 작은 일일지라도 그 일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인연들이 모여 있음을 알아차리고 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을 당연시함이 없이 늘 새롭게 인식하고 감사하고 삼가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일에만 급급해 한다. 일과 목적에 사로잡힌 사람일수록 남의 아픔과 상처나 소중함은 등한시 한다. 이는 늘 눈앞에 자기 일만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지혜가 적은 이는 이보다는 덜하지만 모르는 척 짐짓 외면하거나 등져버리고 때론 욕을 하다가는 실컷 일이 벌어져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알아차리고, 그제야 그 소중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잃음이 모두 남의 탓 인양 한다. 지금 우리처럼 말이다.

따라서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늘 깨어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의 창조적 발전은 없다. 그리고 지금 잃는 것도 오히려 작은 것이 될 것이다.『숫타니파타』에 이런 경구가 있다.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머무실 적 천신이  부처님에게 가까이 와서 인사를 올린 후 이렇게 여쭈었다.

“저 수많은 신들과 인간들은 축복을 원하며 또 행복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고타마시여, 최상의 행복이란 무엇입니까?”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들을 가까이하지 않고 현명한 사람들과 친교를 맺는 것, 그리고 존경할 만한 사람을 존경하는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라.”

부처님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우리는 이번에 큰 행복 하나를 잃었음이다. 앞으로 더 큰 행복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각자가 미망과 아집에 얼마나 사로잡혀 있는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부끄러워하며 뱀이 허물을 벗듯 벗어내야만 한다. 생각과 비전이 다소 다를 지라도 서로로 인해 일이 이루어져가는 것임을 알고 서로를 향해 감사와 존중이 이루어 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열반경』의 말씀을 옮겨본다. “먼저 악을 저질렀다 해도 뒤에 이를 고백하며, 뉘우치고 나서는 부끄러워하여 다시 그런 악을 저지르지 말도록 할 일이다. 탁한 물에 마니주를 놓으면 마니주의 힘으로 인해 물은 곧 맑아지고, 또 안개나 구름이 걷히면 달은 곧 청명해지거니와, 악을 짓고도 능히 회개하는 경우에는 역시 이와 같을 것이다.”    
정묵 스님 통도사 포교국장 manib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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