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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 68. 부지런함이란

기자명 법보신문

젖은 나무에 불 붙이듯 쉼 없이 정진해야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조계사 원심회 김장경 회장.
일어날 때 일어나지 않고
젊고 힘이 있는데 게으름에 빠지고
의지나 생각이 나약한 사람은
밝은 지혜로도 길을 찾지 못한다. - 『법구경』

사찰에서 하루의 일과를 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각 선원이나 강원에서는 매일 새벽 3시에 기상을 해 도량석으로 도량신을 깨우고, 종성(鐘聲)으로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위로하는 것으로 수행자의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고 있다. 사찰에서의 도량석은 하루 일과 중 최초의 의식으로 도량을 맑게 하고, 모든 잡귀를 몰아냄과 동시에 모든 정체되었던 기운을 푼다는 뜻도 담겨 있다.

잠시만 한 눈 팔면 이내 불 꺼져

1968년경 현재 운문사 승가대학인 청도 운문사에는 냉장고가 없었고 부엌의 부뚜막은 황토 흙을 칠한 전형적인 시골 산속 풍경이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법당에서 예불을 마치면 4시가 된다. 백여 명의 아침공양을 6시에 맞추기 위해서는 채공이나 공양주 소임을 맡은 스님들이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고서는 시간을 지키기가 어렵다. 특히 겨울에는 가을에 준비한 취사용 나무가 모자랄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면 부목처사님이 겨울 산에서 바로 청솔가지를 꺾어다 부엌에 재어주고 간다. 청솔가지란 푸른 소나무 가지를 말한다. 소나무에는 송진 기름이 있기 때문에 일단 불만 붙으면 잘 탄다. 하지만 처음에는 마른 나무로 불쏘시개를 해 불이 잘 타도록 청솔가지에 불을 붙이는 일이 중요하다. 청솔가지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마른 솔잎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어야하고 청솔가지에 불이 옮겨 붙도록 쉴 틈 없이 불을 입으로 불면서 마른나무를 연이어 아궁이에 집어넣어야 한다. 일순간이라도 틈이 생기면 연기만 나고 불은 옮겨 붙지 못한 채 꺼지고 만다. 겨울에 쓸 나무를 가을에 충분히 준비해 두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모든 것이 부족했던 옛날 운문사의 살림은 늘 겨울에 청솔가지를 때서 밥을 짓는 일을 경험하도록 했다.

연기로 얼굴은 눈물 콧물 뒤범벅이 되어 있고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가서 밥이 채 끓기도 전에 큰방에서는 아침 공양 시간을 알리는 목탁을 친다. 목탁소리에 대중은 모여서 밥이 들어오기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부엌에 공양주 스님은 황망하기 짝이 없는 가운데 시간이 흘러가고 늦어버린 아침 공양이 끝난 뒤에는 시간을 엄수하지 못한 잘못에 대하여 대중 참회를 해야 했다. 그리고 온종일 사찰의 모든 일정이 조금씩 늦어지는 책임을 자신의 게으름과 부주의로 받아들이며 부엌에서 가슴을 졸인 채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 다음 날도 또 다시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에 매일 긴장하면서 대중 공양주를 살았던 시절이 기억난다.

지금도 푸른 소나무 가지를 바라보면 눈물로 퉁퉁 부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생각나서 혼자 미소를 짓는다. 이제는 사찰의 생활환경도 편리하게 개선되어서 청솔가지로 새벽 밥솥에 불을 지피는 사찰은 이미 없다. 우리 모두 시간을 다투면서 청솔가지에 불을 붙이려던 그 노력을 지금은 어디에 쏟고 있는 것일까?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여러 종류의 길이 있고 어느 것 하나 쉬운 길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출가하여 수행자로 살아가는 길은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더욱 어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일거수일투족이 다 의미가 있고 진리를 향해서 방향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청솔가지에 불을 붙여서 밥을 짓던 그 순간은 그 자체로서 진리의 길 위에 서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제 시간에 밥을 지어서 백여 명의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는 것이 진리였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확고해야 포교도 가능

지금 내가 게으르지 않고 진리의 길에 매진하는 것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자신에게 묻곤 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에 정성을 다하고 찾아오는 불자들에게 진실로서 길을 가르쳐드리는 일일 것이다. 나 자신이 확고한 신념과 진리로 충만해 있어야 남을 향해서도 참다움으로 마주대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10년 또는 20년을 내다보았을 때 불법(佛法)은 어떠한 모습으로 전해져야 할까. 불자들은 지금보다는 좀 더 부처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승려는 확고한 신념으로 석존의 6년 고행 정신으로 자신을 가다듬고 세상을 향해서 맑은 기운을 내뿜을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세상 속에서 위축되지 않도록 게을러서도 안 되고 나약해 져서도 안 된다. 생명, 평화를 제일의 주제로 삼고서 3천년을 이어온 불교를 이제 참으로 필요로 하는 지점에서 주저앉을 수는 없는 것이다. 부처님을 향한 신심과 불법을 실천하려는 대원력이 새삼 요청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 옛날 청솔가지에 불을 붙이던 노력을 떠올리면서 게으르거나 나약함에 안주하지 않고 매순간 정법을 향하여 정진하고 지혜의 불꽃이 피어나서 꺼지지 않도록 근행정진(勤行精進)하려는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푸른 솔잎에 불을 붙이려고 일심정력(一心精力)으로 노력했듯이, 순일(純一)하고 무념(無念)한 하루하루의 기도 정진을 자신에게 당부해 본다. 이것이 어지러운 세상을 오늘 살아가는 진정한 수행자의 본모습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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