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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극복 이끌었던 호국 스님들

기자명 법보신문

살수대첩서 울릉도 수호까지 모두 ‘견위수명〈見危授命〉’
휴정·유정 스님 외에도 잊혀진 ‘호국승려’ 다수

 
임진왜란 당시 금산에서 장렬히 순국한 승장 영규 대사와 조헌 선생의 전투장면을 그린 기록화.

한국사에서 ‘호국불교’하면 청허당 휴정(1520~1604) 스님이나 사명당 유정(1544 ~1610), 기허당 영규(?~1592) 스님 등을 흔히 떠올린다. 휴정 스님은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73세의 노구를 이끌고 승병을 모아 구국의 횃불을 치켜든 고승이었고, 유정 스님은 평양 수복을 비롯해 의령, 울산, 순천 등에서 큰 전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훗날 일본에 건너가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500명을 인솔해 귀국한 임진왜란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영규 스님 또한 800여 명의 의승군을 이끌고 의병장 조헌과 함께 청주성 탈환에 성공한데 이어 군사적 요충지인 금산에서 왜적에 맞서 장렬히 전사했던 승병장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스님 외에도 1700년 한국불교사에서 나라와 민중을 위해 죽비 대신 칼자루를 움켜쥔 스님들은 삼국시대부터 등장한다. 그리고 그 숫자 또한 결코 적지 않다. 다만 이름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 갔거나 혹은 후대 사람들이 애써 기억하지 않을 따름이다.
『고려사』 제113권에는 당태종의 침략을 물리친 3만의 고구려 승군(僧軍)이 소개돼 있으며, 수나라를 무찌른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성공 배경에도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7명 스님들의 지대한 공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신라 태종 무열왕 때 도옥 스님은 “승려된 자로 위로는 도를 닦아 마음을 밝히고 아래로는 착한 일을 한 것이 없으니 싸움터에 나가 목숨을 바치는 것이 낫겠다”며 적진에 뛰어들어 장렬히 전사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고려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김강녕 경기대 교수에 따르면 『고려사』에는 스님들이 요·금·원제국의 침략에 맞섰던 군사적인 호국사례가 14건이나 나타난다. 여기에는 1010년 거란이 재침했을 때 법언(法言) 스님 등 승병들이 적군을 요격해 거란에게 포위당한 고려군을 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1104년엔 국경을 침략해 민간인을 학살하던 여진족의 정벌을 위해 스님들로 구성된 항마군이 편성돼 있었을 정도다.

또 출가자였던 김윤후는 몽고군이 쳐들어오자 지금의 용인시 남사면에 위치한 처인성(處仁城)으로 몸을 피한 뒤 입보민(入保民)들을 지휘해 적장 살리타를 없애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음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 뿐만 아니다. 1254년 몽고가 다시 쳐들어왔을 때는 당시 성주산성을 지켰던 승장 홍지(洪之) 스님을 비롯해 이후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 때에도 승병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음을 역사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호국불교의 전통은 불교를 탄압했던 조선시대에도 변함없이 계속됐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누란의 위기를 겪으며 승병의 역할은 더욱 빛났다. 휴정, 유정, 영규, 처영 스님 외에도 당시 무기를 만들고 성을 쌓았던 법견 스님, 죽산성 수비대장을 맡았던 영주 스님, 월계산성을 쌓았던 견우 스님, 경상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해안 스님, 평양성 탈환 전투에서 활약했던 인오 스님과 천연 스님,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수비대장으로 임무를 수행한 법정 스님, 파사성을 축조했던 승군사령관 의엄 스님, 의승을 모집하고 권율 장군의 지휘 아래 적과 싸우다 입적한 설미 스님 등 수많은 출가수행자들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온몸을 꽃처럼 바쳤다.

특히 자운 스님과 옥형 스님은 이순신 장군과 뜻을 같이해 300여 명으로 구성된 의승수군을 결성해 함께 싸우고 군량미까지 조달했으며, 이 충무공이 서거한 후에는 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여수 석천사를 창건하기도 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스님들은 군량미를 수송하거나 성을 쌓는 일을 담당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발발한 병자호란 때에는 각성 스님과 명조 스님 등 4000여 명의 의승군이 또다시 큰 활약을 펼쳤으며, 이후에도 남한산성과 북한산성 등을 수호하는 중대한 역할을 맡았다.

이밖에도 조선 숙종 때 안용복과 함께 일본으로부터 울릉도를 지켜낸 스님들도 있다. ‘떠돌이 승려’로 기록돼 있는 뇌헌, 승담, 연습, 영률, 단책 스님 등 5인이 바로 그 주인공으로 오늘날 불교계에서조차 비석하나 세워주지 않지만 나라를 지킨 대표적인 호국승려임은 분명하다.

김선근 동국대 교수는 “지난 1700년 한국불교사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보여주었던 ‘견위수명(見危授命)’의 호국불교 정신은 참다운 대승불교의 실천과 다르지 않다”며 “호국불교의 부정적인 면이나 왜곡된 모습이 있다하여 호국불교 그 자체까지 부정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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