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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삶은 완성을 싫어한다

기자명 법보신문

이하(李賀, 791~817)라는 중국 당대(唐代)의 시인이 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던 이 시인이 요절한 때가 27세, 240여 수의 시를 남겼다. 송대(宋代)의 전이는 그의 『남부신서』에서 “이백은 천재(天才), 백거이는 인재(人才), 이하는 귀재(鬼才)”라고 했다.

‘귀(鬼)’는 육신이 없이 떠도는 영혼, 풀길 없는 삶의 우수를 품은 망령이다. 이하의 시가 ‘귀기(鬼氣)’를 띤다는 것은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몽환적인 세계를 그려냈기 때문이다. 하급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자라면서 시에 재능을 보여 당대의 대 문인이자 정치가였던 한유(韓愈)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3년간의 장안 생활을 접고 고향에 돌아온 나이가 23세, 몸의 병은 이미 깊어 있었다. 그래도 시작(詩作)만은 그만둘 수 없어 어린 시종을 데리고 나귀를 타고 등에는 낡은 비단주머니를 메고 다니면서 시상이 떠오르는 대로 적어 넣었다. 어머니가 주머니의 시들을 꺼내보고 “이 아이가 심장을 토해내야만 시를 멈추겠구나” 했다는 것이다.

 하루는 대낮에 마차소리를 울리며 붉은 비단옷을 입은 사람이 붉은 규룡(龍)을 타고 허공에 나타났다. 태고의 글자가 적힌 서판을 이하에게 건넸으나 그는 읽지 않고 엎드려 말했다. “어미가 늙고 병들었으니 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천인이 웃으면서 “천제께서 백옥루를 세우시고 그대를 불러 문장을 새기고자 한 것이다. 천상은 즐거워서 고통이 없다”고 했으나 이하는 끝없이 울다 혼절했다. 그의 창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허공에서 마차소리와 풍악이 들려왔다. 어머니가 급히 사자(死者)의 밥을 짓게 했는데, 밥이 채 익기도 전에 이하는 숨을 거두었다. 이 이야기는 이상은의 『이하소전』에 기록된 것이다.

 십 수 년 전에 이하의 이야기를 처음 읽고 난 후, 그의 시를 흠모하여 지금도 한 번씩 들쳐보는 것은, 특별한 죽음을 접할 때마다 그의 임종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천상의 상량문을 쓰는 등의 것도 인간의 일인지, 헤아릴 길 없는 우주 만물의 이치가 여전히 신묘하기만 하다.

 삶과 죽음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동서양의 각 종교나 사상과 달리 불교에서는 윤회사상이 있어서 나고 죽는 문제에 유연하고 자유로웠다. 특히 8세기에 티베트 불교의 위대한 스승인 ‘파드마삼바바’가 저술한 『사자의 서』는 죽은 영혼이 사후의 윤회와 환생의 과정, 나아가 영혼이 악도에 떨어지지 않도록 어떻게 영가법문을 일러주고 재 의식을 진행해야하는지를 명확히 일러놓고 있다.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Carl Jung, 1875-1961)이 극찬하기도 했다.

 노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진행된 49재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49재는 매 칠일마다 일곱 차례에 걸쳐 모시는 불가의 전통의식이다. 이 기간 동안 생자와 망자 간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의 화해가 이뤄지는 것이다.

 “시는 시인의 운명이 완성되는 것을 증오한다(文章憎命達)”라고 한 두보(712~ 770)의 말이 맞는다면, 정치도 정치가의 운명이 완성되는 것을 증오 못할 리 없다. 퇴임하여 자연인으로 돌아간 대통령은 참 행복해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더 이상 ‘귀거래사’를 읊조리던 유쾌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유감스럽게 다가온다.

삶은 항상 부족하고 영원히 미제(未濟)의 것, 속환사바(速還娑婆)하시라!

법련사 주시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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