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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지성] 13.베르그송-민희식 전 한양대 교수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서 인류 구원의 길 발견한 생철학자

초기불교·중관·선에 깊은 조예
과학적 지식·지성의 한계 지적
배타적 종교는 닫힌 사회의 표본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은 서구의 합리주의 사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모순을 불교의 유식론(唯識論) 이론에 입각해 새로운 면을 개척하여 서구철학에 획기적인 선풍을 일으켰다. 유식론은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베르그송은 이것을 유(有)와 무(無)의 관계와 아는 것과 알려지는 것의 두 가지 면에서 고찰하여 그의 독특한 철학을 전개한 것이다. 그는 용수의 중관(中觀) 사상을 비롯해 천태(天台)·화엄·선(禪) 등 대승불교의 여러 이론을 흡수하여 자기의 독특한 사상을 구축해 나간 것이다.

베르그송은 특히 그의 만년의 저서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1932)에서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그는 이 저서를 집필하는 동안 꾸준히 불교사상의 영향 아래 인간구원의 문제에 몰두했던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혁명, 경제 대공황, 파시즘의 대두, 프랑스 사회의 향락주의 등 서구문명의 극한 위기 상황 앞에서의 베르그송의 고뇌와 이 위기를 타개해 나가기 위한 노력을 알 수 있게 한다.

직관으로 생명 파악 강조

이 저서 속에서 그가 주장한 도덕과 종교의 두 근원은 ‘닫힌 사회’와 ‘열린 사회’ 그리고 ‘정적 종교’와 ‘동적 종교’이다. 특히 닫힌 사회나 도덕이 결코 열린 사회나 도덕으로 유도될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이 이 저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전자에 속하는 개인이나 가족, 국가의 집단은 사회적인 본능에 의해서 조직되는 것으로 어디까지나 폐쇄적이다. 다시 말하면 개인에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국가로 확장되는 범주는 그 이상 확장되지 않는 유한한 것이다. 그러나 인류라는 열린 사회나 도덕은 무한하다.

 
1927년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했던 베르그송은 20세기 서구사상의 흐름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프랑스 철학자다.

이처럼 베르그송의 대립된 두 개념에 대한 상세한 서술에는 불교의 영향을 볼 수 있고, 베르그송 자신이 불교에 대해서 발언한 내용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실제 베르그송의 저술 가운데 불교와의 관련 속에서 고찰될 수 있는 책은 선불교와 천태의 지관(止觀)을 연상케 하는 직관적 통찰이 그 근거를 이루는 『형이상학적 입문』(1930)과 여래사상을 밑받침하여 ‘생명의 약동’ 혹은 ‘흐르는 사물’을 포착하는 내부의 영사기에 대한 설명으로 법론(dharma)의 문제를 다룬 『창조적 진화』(1907)가 그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베르그송은 불교의 ‘아라한들(Les arachants du bouddhism)’의 경우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이 말은 불교학자가 좁은 의미로 사용하는 ‘소승불교’에 있어서의 각자(覺者)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아라한은 부처, 여래의 다른 이름으로 그것은 고타마 붓다를 포함하여 대승, 소승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진리를 깨달은 자 전반에 대한 호칭으로 쓰이고 있으며 중국불교에 나오는 나한도 거기에 해당된다.

베르그송의 생(生)의 철학의 핵심이 되는 말은 생명의 약동(elan vitale)으로 그에 의하면 모든 것이 본질(우주의 원리)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쉬지 않고 창조하여 보다 뛰어난 생명으로 약동하는 무한한 에네르기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의 약동이라든가 창조적 진화, 순수 지속이 그의 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서구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신의 문제를 다루어왔으며 신의 존재가 증명되지 않는 한 신앙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 서구의 철인들은 종교적인 면에서의 신을 3가지 테두리로 증명하고자 하였다. 즉 최고의 완전한 것을 생각하면 그것이 신이라는 ‘존재론적 증명(存在論的 證明)’, 모든 존재의 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궁극 원인에 도달하며 그것이 신이라는 ‘우주적 증명(宇宙的 證明)’, 이 세상에는 모든 것이 너무나 잘 설계되어 있고 그것을 설계한 자가 있으며 그것이 신이라는 ‘목적론적 증명(目的論的 證明)’이 바로 그것이다.

서구의 철학은 베르그송은 주지주의(主知主義)나 합리주의와 같은 영원한 상(相)에서 실제를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모든 것은 지속(持續)의 상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그는 그것이 지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직관(直觀)에 의해서 파악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과학적 방법 내지 지식을 포함한 지성이란 양(量)으로 환원할 수는 있지만 어느 시점에서 운동하고 있는 것은 단절시키고 정지되어 있는 것으로서 취급할 때만 이치에 들어맞는다. 그러나 약동 그 자체인 생명에 대하여 지성은 그 흐름을 정지시키고 그 절단면만 인식할 따름이다. 따라서 과학적 인식이란 생명 그 자체가 빠져나간 빈껍데기에 대한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만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직관은 생명의 내부에 스며들어 생명과 일체가 되고 정신적인 공감을 통해 생명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베르그송의 사상은 선(禪)과 매우 유사하다.

저술 곳곳에 불교 영향

베르그송은 『종교와 도덕의 두 원천』에서 ‘열린 도덕’과 ‘닫힌 도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베르그송은 인간사회와 동물사회를 다음과 같이 비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여왕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여왕벌이다. 그것은 전체를 위해서만 존재하고 그 사회의 질서도 본능적으로 결정되어 있어 변동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사회는 본능 대신 지성이 지배한다. 즉 개인의 창의와 노력에 의해서 인간사회는 진보하고 변화한다. 반면 지성은 이기주의를 낳고 사회의 질서를 해치는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다. 이 지성의 부정적인 면을 보충하는 것으로서 금기, 관습, 원시종교가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습이나 원시종교라는 사회적인 힘은 가족, 부족, 도시, 국가라는 집단을 이루고 질서를 유지하는 반면 다른 집단이나 그 집단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적대적이고 배타적이다. 이러한 적대적·배타적 집단을 베르그송은 ‘닫힌 사회’로 보고 여기서 나오는 도덕을 ‘폐쇄된 도덕’이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인류를 사랑하는 ‘열린 도덕’이 있다. 이것은 ‘닫힌 사회’가 확대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 양자 사이에는 질적 차이가 있다. 여기에는 위대한 인격자의 혁신이 필요하다. 위대한 인격자의 생의 약동이 만인의 마음을 움직여 인격적으로 합일하므로 뛰어난 개척자로서 인류에게 공헌할 수 있다. 그것은 결코 힘이나 권력, 명령이나 강제가 아니고 위대한 인격의 영향력으로 인류의 행복을 실현해나가는 것이다. 부처님이나 예수는 이러한 면을 지니고 있다. 다만 기독교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동떨어진데 문제가 있다.

신약은 「마태복음」부터 시작된다. 기독교에는 오류가 절대로 없다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주장한다. 그리고 다른 인류의 모든 가르침을 배척한다. 「마태복음」의 유명한 구절에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둘 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구약의 시편에 나오는 말을 외친 것이 기록되어 있다.(마태복음 27~46)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예수의 제자들은 다 도망쳤고 마태도 잡힐까 두려워 거기에 있었다하더라도 그 이전에 멀리 도망쳐 버렸다. 예수 주위에는 로마군인들 밖에는 없었다.

아마도 “천사 에리야 에리야여, 천사 라파엘이여, 나를 맞이해주세요.”하고 외쳤을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로마인은 예수가 중얼대는 말을 듣고 ‘신이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제멋대로 해석한 것이다. 그것이 소문으로 와전되어 후에 마태가 이 이야기를 듣고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마치 자기가 들은 것처럼 쓴 것이다. 일단 마태가 쓴 것이니까 이것은 옳은 것이고 절대적인 진리로 오류가 아니라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독교에는 오류가 없다는 설은 당시 서구에서도 이미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베르그송이 활약하던 당시에도 이러한 의문이 있었지만 그것을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었던 시대이다. 베르그송이 말하고자 하는 폐쇄된 종교란 이러한 예수의 뜻이 아닌 내용을 만들어 예수만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독선이다. 참된 종교는 무엇보다 인류전체 나아가 지구상에 사는 동식물까지도 자비로 이끌고 온 인류가 행복하고 편안하게 사는데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종교가 서로 좋은 점을 인정하고 서로 대화하며 각기 자기가 믿는 종교에 정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붓다는 위대한 인격

부처님은 무한한 자비심과 지혜로 비단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 식물까지도 사랑하고 자연을 존중하고 인간이 자기 마음속에 보물(불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무명에 헤매므로 거기서 깨어나 깨달음을 얻으면 인류는 평화롭고 행복해지리라 하셨다.
베르그송은 서구의 혼란기를 바라보며 ‘동적종교’로 파악한 불교를 통해 인류의 구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민희식 전 한양대 교수 


민희식 교수는

1934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이화여대, 한양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1986년 프랑스 최고문화훈장을 받았다. 저술로는 『프랑스 문학사』, 『불교와 서구사상』, 『법화경과 신약성서』, 『예수와 붓다』 등이 있다. 또 옮긴 책으로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감정교육』, 『보바리 부인』, 『에밀』, 『우연과 필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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