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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 차고 더운줄 안다

기자명 법보신문

육조스님은 의발을 빼앗으러 뒤를 쫓아온 도명 스님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법을 청하니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고 했다. 도명 스님은 이 한마디에 바로 돈오하고 나서 “마치 어떤 사람이 물을 마심에 차고 더운 줄 스스로 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한편 “어떤 비밀이 또 있느냐”고 물었지만 육조스님은 “비밀이 오히려 그대에게 있으니 다시는 의심하지 말라”고 했다.

더우면 더운 줄 아는 것은 보통 사람이나 깨친 사람이나 차별 없이 가지고 있는 사실이지만 보통 사람은 본능적으로 아는 것을 주인으로 삼아서 한량없는 육도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수행하는 사람은 더운 줄 아는 성품은 수행하고는 상관없이 본래 아는 것이지만 믿지 못하고 수행을 통해서 따로 구하려고 한다. 누구나 물을 마셔보면 차고 더운 것을 바로 아는 것이지 점점 수행을 해야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오매일여하고 상관없이 먼저 깨치면 되는 것이니 이것을 돈오라고 한다.

돈오를 하고 나서는 돈수나 점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오직 돈오만 이야기 하는 것이 선가의 돈오 사상이다. 하지만 돈오한 사람이라도 아직 깨달음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습기가 남아 있으면 반드시 무심의 경절문 활구로써 남은 습기를 녹이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때 자연스럽게 성품과 하나 되는 오매일여를 경험하게 되지만 성품 밖에 따로 미세망념을 통과 하여 드러나는 경계가 있다고 집착하면 영원히 수행상을 벗어나지 못하여 자유롭게 일상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돈오 이전에는 아직 성품을 모르고 중생 업식으로 화두를 하다가 어쩌다가 간절한 마음에 한코의 의정이 성품에 계합하여 돈오하게 된다. 깨닫고 보니 비록 범부라 할지라도 부처님과 조금도 차별이 없으며 또한 얻은 것이 없고 잃어버린 적이 없어 항상 쓰고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러나 상근기는 여기에서 더 이상 할일이 없지만 보통 사람은 아직 습기가 남아있어 이제부터 참으로 수행이 시작 된다.

이제야 비로소 성품을 보았으니 화두를 획득하게 되어 일어나는 일체 생각과 대상을 바로 알아차리고 무심인 경절문 활구로써 성품을 증명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남은 업력을 녹이게 된다. 그러므로 돈오 이전의 중생심으로 하는 화두 수행과는 질이 다른 공부이다. 이 과정을 돈오점수의 방편으로 간화선이라고 해야 하지만 아직 화두에 뜻이 남아있어 반드시 경절문 활구로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랜 세월을 낭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오돈수의 입장에서는 바로 경절문 활구를 참구하기 때문에 굳이 이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으므로 금기시 하고 있다.

화엄의 종장 청량 스님은 수행을 통하지 않은 돈오돈수나 돈오점수의 돈오는 해오라고 했기에 육조스님이 말한 선가의 돈오와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간화선에서는 경절문 활구로써 돈오돈수를 제시 했지만 중생심을 벗어나지 못한 참의 사구는 무심의 성품에 계합할 수 없으므로 우선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확실하게 믿어야 한다고 했다.

마음이 본래 부처라는 믿음만 성취하면 정견을 갖추게 되어 바로 대분심과 대의심을 자연히 갖추게 되고 일체 생각과 대상이 성품의 작용인줄 바로 요달하면 활구로써의 의정은 성품이 작용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다. 그러나 확실한 믿음을 성취하지 못하면 선정에 치우치게 되어 반드시 닦아야 한다는 견해에 떨어지고 현실을 떠난 특별한 수행을 수반하게 되어 수행과 생활이 항상 겉도는 결과로 나타나게 되고 지금 이 자리에서 주인이 되지 못한다.

지금 제방선원에는 많은 눈푸른 납자들이 치열하게 화두를 참구하고 있다. 사찰은 단순한 휴식이나 오락 공간이 아니며 유구한 역사와 함께 정신문화가 살아서 숨 쉬는 수행의 공간이다. 그런데 사찰 지역을 자연공원법으로 묵어두고 오락과 유흥의 장소로 만들어서 민족문화유산을 파괴하려는 책동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정신이 함께 병들 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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