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뤄낸 2002
'꿈'을 이뤄낸 2002
  • 문병호
  • 승인 2004.08.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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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되뇌는 다사다난이란 표현을 어느 해보다 더 실감으로 느낀다. 2002년은 한국인에게 그렇게 특별한 한해였다. 그중 압권은 말할 것도 없이 6월 한달 한국인들의 눈과 귀와 영혼을 사로잡은 월드컵 4강 신화 체험이다.

필자는 월드컵을 분수령으로 한국사회의 큰 흐름이 달라졌다고 본다. 유럽인들이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를 가르듯 한국은 월드컵 이전과 이후로 갈라 보아야 한다. 이점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라도 성공을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다. 온 국민이 하나되어 5천년 역사에서 가장 행복한 꿈만 같은 체험을 나눈 6월을 거치며 한국과 한국인은 새롭게 태어났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생각이 달라졌고 눈높이가 바뀌었고 욕구가 달라졌다. 그 변화의 흐름은 세대교체라는 큰 물결을 타고 있고 그 밑바탕은 정보통신 혁명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온 정보통신 혁명이 어느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기성세대의 그늘에 있던 젊은 세대가 사회의 중심무대로 나서고 기적과도 같은 월드컵 성과를 계기로 민족의 자기실현 잠재욕구가 폭발적인 분출을 시작하는 양상이다.

최근 의정부 여중생 압사사건에 대응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놀라운 의사결집, 자기표현, 행동통일은 인류사상 처음 보는 최첨단 모델이다.

생각해보라. 어느 시민사회가 한달 남짓 사이에 세계전역 주요도시에서의 촛불시위를 기획해 실현시키고 세계언론의 주목을 끌어낼 수 있겠는가. 2002년의 한국말고는 불가능하다.

우선 한국말고는 세계 여러 나라에 고루 고루 교민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공동체가 없다. 해외진출이 많다는 유태인. 중국인, 인도인등 민족집단도 진출이 미국이나 동남아 등 특정지역 특정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세계 주요도시에서의 이벤트 기획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한국은 6백만의 동포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4강을 포함해 전 세계 1백20여 나라에 고루 분포해 있다. 한국이 가진 가장 큰 전략무기라는 것을 재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구슬이 많은들 무엇 하는가. 꿰어야 보배다. 이점에서 인터넷 인구비율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한국사회의 정보통신 기반과 한국인들의 독특한 문화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무명의 젊은 시민이 인터넷상에서 촛불시위를 제안하자 너도나도 호응, 메시지를 확산시켜 믿기 어려운 짧은 시간에 국내에서만 30만이 참여하는 전 세계적 평화시위 이벤트를 성사시켰다.

믿기지 않는 상황에 놀란 기성세대가 이를 단순히 '반미'로 규정짓고 '보이지 않는 손' 운운하는 것은 바로 과거의 안목과 잣대로 미래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어리석음이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국제화-세계화가 유행어로 통용된 적이 있고 아시아-태평양 시대의 중심국가라는 정치적 슬로간이 요란스레 내걸리기도 했지만 이제야말로 한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중심국가의 비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뉴 밀레니엄이 비로소 열린 셈이다.

이런 새 한국인을 과거의 발상, 눈높이로 설득하거나 규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 성공할 수도 없다. 한국인들은 이제 미국의 영향권 안에서 일본의 기술과 자본에 의지해 생존을 목표로 하던 국가의 국민이 아니다. 당당한 주권국가의 국민으로 언제 어디서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을 보장받기를 원한다. 먹고살기 위해 인격권을 양보할 수도 있는 의식 없는 노동자가 아니라 모두가 공동체의 주인이기를 원하는 깨인 시민의 나라다.

누가 이처럼 달라진 나라의 달라진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 21세기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미래를 개척해 갈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대통령은 참으로 큰 사명을 떠 안았다.



문병호<중앙일보 J&P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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