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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 일면불 월면불

기자명 법보신문

지루한 장마 끝에 태양이 모처럼 환한 얼굴을 드러내니 온통 풀잎마다 새롭다. 도반스님은 아침 일찍 안부를 물으며 오늘은 밤과 낮이 하나로 만나는 일식이 있으니 대낮에 야반삼경의 종소리를 들어보라고 한다. 사시가 되어 앞마당에 나가 너럭바위에 누워서 태양과 눈 맞춤이 시작되었다. 하늘에는 여기저기 먹구름이 떠 있고 양떼구름 사이사이마다 청잣빛 하늘이 신비스럽기만 하다. 한편 뒷산 능선이 그려내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한가로이 관상하면서 긴장마의 지루함을 털어내며 일면불과 월면불의 만남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먹구름을 떨치고 나타난 것은 초승달의 모습이다. 오랜 윤회의 흐름 곳에서 홀연히 양변이 끊어지고 나타난 마음 달이니 참으로 싱그럽고 천진한 면목에 문득 환희심과 함께 침묵이 흐르고 있다. 어느덧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일면불과 월면불을 되뇌니 낮과 밤이 하나 되어 천지는 빛을 잃었다.

이윽고 태양은 구름 속에서 출몰을 반복하며 반다로 모습을 바꾸더니 이내 점점 둥글어 지는 화려한 우주 쇼를 펼치고 있다. 남녘 바다 섬에서 누리는 청복을 만끽하며 이제는 강렬한 빛을 피해서 느티나무를 붙잡고 가지 사이로 드러나는 일식의 모습을 관찰하니 더욱 신비스럽고 환희심이 솟구쳐 오른다. 지금 우주의 화려한 쇼를 보기 위해서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참여하고 있으며 법계의 중중무진한 인연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하늘을 보니 고추잠자리도 환희의 날갯짓으로 더욱 높이 날아오르고 있다.

허공은 텅 비어 있어 모양을 그릴 수 없지만 삼라만상을 능히 포용하여 해와 달을 띄우고 사시사철을 운행하며 지수화풍을 인연하여 만물을 성주괴공으로 다스리고 있다. 하지만 허공은 각에서 나온 것이니 누가 법계의 성품을 알고자 한다면 오직 일체가 마음에서 비롯함을 요달해야 한다.

장야의 오랜 무명으로 전도되어 살아가고 있는 미혹한 범부들은 이러한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무위자연이라는 말에 떨어져 밖으로 진리를 찾고 있다. 그래서 허공은 해와 달이 하나로 만나는 인연을 연출하여 낮과 밤이 둘이 아닌 도리를 설하고 어리석은 중생들의 허망한 분별인 양 변을 일시에 빼앗아 버린다.

한편 밖으로 향하는 생각의 빛을 거두어 안으로 돌이켜 가만히 성품을 반조하라고 요구하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오직 허망한 변화를 쫓아서 실제인양 착각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법계가 오직 마음이며 인연일 뿐임을 요달하게 되면 변화의 중심에 서게 되어 한량없는 묘용을 연출해 낼 것이다.

어느덧 어젯밤 꿈속의 일 인양 일식이 지나가고 해와 달은 각자 제 자리로 돌아가니 꿩은 크게 소리치면서 산을 내려오고 바다는 앞마당에 넘실거리고 있다. 이제 잠시 청복을 누렸으니 회향게를 외우면서 폭우로 인해 시림하고 있는 이웃들을 생각하며 두 손 모아 합장하고 모두가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발원해 본다.

풀잎은 저마다 삼복더위의 단련을 거치면서 더욱 몸을 낮추고 진한 풀 향기를 토해 낼 것이다.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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