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본생경, 백유경은 아동용인가?

기자명 법보신문

『안데르센평전』/재키 울슐라거 지음/전선화 옮김/김상욱 감수/ 미래M&B

『본생경(쟈타카)』이나 『백유경』, 『현우경』을 읽는 성인불자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교훈용 경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이미 출간되었거나 앞으로 출간될 아동용 경전도 이 세 가지 경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들이 아동용으로 ‘전락’해서 어른들에게 무시당하게 된 이유가 뭔지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동물들이 등장하는 우화집(본생경)이라서? 짤막한 에피소드들 끝에 ‘착하게 살아라’라는 교훈을 안겨주는 경(백유경, 현우경)이라서?

만약 이 경전들에 대해서 이런 이유를 들어 성인불자들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뭘 모르고 하는 말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고매한 이치만을 되뇌면서도 정작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고 말며, 거칠기 짝이 없는 세파에 휩쓸렸으면서도 꾀를 내어 헤쳐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만 정신이 팔린 이 세상의 아줌마 아저씨들을 심하게 꼬집고 찌르는 경이 바로 『본생경』이요, 『현우경』, 『백유경』인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읽을 경이 아니라 어른들이 읽고서 키득거리는 가운데 제 맘속에 들어 있는 어리석음을 슬쩍 견주어보게 만드는 경이라는 말씀입니다.

세계적인 동화작가요, 전 세계 모든 아이들의 영원한 이야기꾼 안데르센은 자신의 동화 집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아이디어를 포착한 다음,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어머니와 아버지가 듣게 될 것이며, 무언가 그들을 위한 것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동시에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쓴다.”(290쪽)

안데르센은 아시다시피 구두수선공과 동네 빨래꾼 부모에게서 자라나 헐벗고 굶주리고 천대받고 지내다가 막연히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에 홀로 도시로 뛰쳐나온 사람입니다.
그는 후원자를 찾아다니면서 심한 모멸과 냉대를 맛보았고, 마침내 막강한 후원자를 만나 서서히 명성을 날리며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안데르센은 자신의 천한 태생에 대한 열등감을 떨치지 못하고 영원히 귀족집안의 거실을 들여다보는 아웃사이더로 지내야만 했고, 심지어 후원자의 아들과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평생 화목한 가정을 꾸리지 못했습니다. 이런 억눌린 감정은 안데르센으로 하여금 펜을 들게 하였고, 그는 곧이곧대로 표출하기 보다는 아이를 위한 이야기로 한번 걸러서 세상에 풀어놓았습니다.

요정 같은 공주님과 백마를 탄 왕자님에 홀리는 것으로 안데르센의 동화를 덮어도 그만이겠지만 그 속에 담긴 신분상승을 꿈꾸던 한 남자의 끝없는 좌절과 비애, 그리고 당시 부르주아지 계급들의 자신들만의 리그를 고발하는 목소리를 읽어낼 수만 있다면..... 이건 어쩌면 본생경과 백유경 속에서 어른을 위한 메시지를 콕 집어낼 때와 똑같은 ‘독서의 발견’이라 할 것입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