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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의 초원 몽골을 가다] 2. 칸 후예들의 신앙

기자명 법보신문

초원따라 흐르는 삶 속 샤머니즘의 피도 흘러

 
어워를 휘감은 하닥에서 경외감마저 전해진다. 몽골인들은 모든 곳에 신이 있다고 믿으며 돌탑을 만들어 의식을 지낸다. 돌탑 위에 법륜이 있는 것이 마치 몽골 샤머니즘과 티베트 불교가 만나는 접점 같아 이채롭다.

초지와 모래언덕이 공존하는 바양고비의 게르 캠프에 아침이 밀려왔다. 밤새 탄 장작은 검게 말라비틀어졌고 게르 안엔 약간의 한기가 맴돈다. 그래도 지붕 위로 이어진 연통은 아직 따뜻하다. 남쪽으로 난 문을 열고 주위를 살폈다. 식당 게르 연통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른다. 우유차와 아침을 준비하는 중이리라. 엷게 이는 바람에 흰 연기들이 먼 길을 떠나고 있었다.

어제 울란바타르에서 무려 6시간이나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한 바양고비 캠프. 그러나 싱그러운 초원은 지독하게 고요한 무료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울렸다. 편도 1차선, 포장도 제대로 되지 않은 도로에서 지나가는 차도 없건만 웬 경적이란 말인가. 가이드 어기 씨가 급히 입을 열었다.

돌탑 향해 안녕 비는 초원의 운전자들

“저기 길 가 푸른 천으로 휘감긴 어워가 보이나요? 운전자들이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게 해달라고 비는 거예요. 경적을 세 번 울리면서.”

푸른 천(하닥, 신이나 공경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천)이 휘감긴 어워란 몽골에서 길잡이이자 신앙이며, 숭배의 대상이다. 길을 떠나는 자는 누구나 이 돌탑을 돈다. 시계 방향으로 세 바퀴를 도는 데 원래 세 번의 흰 우유를 뿌리며, 세 번의 안녕을 기원한다. 이 돌탑은 몽골인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있다. 초원의 들판에도, 계곡이나 산, 사원, 도시에도 있다. 이 어워에 얽힌 이야기는 으스스하다. 약간의 한스러움과 죄책감이 서려있다.

한 마을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소녀의 혼은 밤마다 마을을 서성였다. 그 때부터 마을의 가축들은 소리 없이 떼로 죽어 나갔다. 사람들은 소와 말을 죽여 제물로 바치고 소녀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시신을 화장해 마을 서쪽에 돌을 쌓아 묻었다. 그리고 무덤에 나뭇가지를 꺾어 신성한 장소임을 표시했다.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 부잣집에 양치기 소년이 살았다. 어느 날 양떼들을 데리고 초원으로 나가 잠깐 잠이 들었고, 양떼들은 야생 늑대에게 습격을 받아 대부분 죽었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소년은 나무에 목을 맸다. 소년의 혼은 초원으로 스며들어 양을 지키는 정령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소년이 죽은 곳에 돌로 무덤을 쌓고 버드나무 가지를 꽂아 넋을 기렸다. 이렇게 얽힌 이야기들로부터 어워가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덜컹거리는 차에서 아무도 모르게 합장하며 나지막이 지장보살을 불러본다.

얽힌 이야기가 무덤과 관련 있지만 몽골인들에게 어워는 대지와 물의 신이 살고 있는 그 무엇이다. 대지의 어머니, 즉 에투겐을 말한다. 어머니의 배를 뜻하는 이 말은 곧 생명의 어머니인 대지를 뜻한다.『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는 대지의 신을 대하는 13세기 후반 몽골인들의 지극한 태도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들이 숭배하는 신들 가운데 하나가 세상 모든 것 위에 계시는 나티가이(대지의 어머니인 에투겐을 의미)라고 부르는 것인데, 그들의 자식과 가축과 곡식을 보호하는 대지의 신이라고 한다. 그들은 그를 극도로 숭배하고 존귀하게 여기며 각자 집안에 모시고 있다. (…중략…) 먹을 때가 되면 그들은 비계를 떼어서 신의 입에 바른 뒤 국물을 조금 떠서 집 문 밖에다 뿌린다. 이것을 마치고 나면 그들은 신과 그 가족에게도 몫을 바쳤다고 말한 뒤에 자기들도 먹고 마신다.”

 
몽골 사원 불단에 하닥이 올려져 있는 것은 더 이상 생경한 풍경이 아니다.

몽골인들이 키우던 가축 양을 잡는 의식만 봐도 에투겐에 대한 그네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양을 잡을 때는 피를 대지의 신에 묻히지 않고 고통을 최대한 적게 한다. 한 가족처럼 살아온 가축에 대한 배려다. 날카로운 칼로 목 바로 아래 부위를 약 5센티미터 가량 찢어 그 틈새로 손을 넣어 심장동맥을 움켜잡아 즉사시킨다. 만약 실패라도 하면 가축에게 두 번의 죽음의 고통을 주었다해 호된 야단을 맞는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를 먹는 순례자는 너와 나를 완벽하게 갈라놓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몽골인들은 너와 나의 경계가 없었다.

쏟아지는 이야기를 듣노라니 의문이 들었다. 몽골인 가운데 90%가 불자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샤머니즘의 영향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몽골은 윤회의 초원에 기대 살며 자연스럽게 샤머니즘이 자리했고, 티베트 불교가 신앙의 중심으로 옮겨 왔다고 봐야하는 건가. 실제 몽골 샤머니즘은 천혜의 자연 환경과 맞물려 생존의 한 방법인 유목이라는 특수한 삶의 방식에서 비롯한다. 가축을 몰기 전 하늘의 움직임과 초지를 살피는 일은 필수였을 터. 그네들에게 자연이란 순응과 공존의 대상인 것이다.

생존 그 자체였다. 그래서 ‘텡그리’라는 하늘 신과 에투겐이란 대지의 신을 숭배한다. 기후 변화가 심한 몽골에서 몽골인들은 기후 변화를 신의 뜻으로 본다. 천둥이 치거나 바람이 심한 날은 텡그리가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 옛날 칭기즈칸은 군사진격을 멈추기도 했단다.

2천여년 이어진 샤먼과 불교의 조우

그런 몽골 땅에 티베트 불교가 들어오면서 샤머니즘이 재탄생한다. 몽골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기원후 4세기 초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쿠빌라이 칸이 1253년 티베트를 점령했을 때, 당시 티베트 불교 승려 파스파를 초청하고 그는 쿠빌라이의 존경을 얻어 티베트 불교는 왕실의 보호를 받는다. 전 국민의 가슴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알탄 칸 시대였다. 1578년 알탄 칸이 티베트 불교 겔룩파에 속하는 고승 소남 갸초에게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를 수여하며 숭배했고 소남 갸초는 알탄 칸에게 전륜성왕이란 칭호를 준다.

몽골어로 ‘달라이’는 바다를 뜻하며 티베트어 ‘라마’는 산스크리트어의 ‘구루’에 해당하는 말로 ‘바다 같이 큰 지혜를 가진 스승’이 바로 달라이 라마다. 이 칭호가 아직까지 쓰이며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주로 일컬어지는 것이 신기했다. 몽골 불교와 티베트 불교 2000여년의 인연이 아직도 성성함에 숙연해질 따름이다. 현재 관음의 화신이라 믿는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텐진 갸쵸다.

 

스투파에 감긴 하닥 역시 몽골인들의 신앙을 한 번에 알게 한다.

비교적 빨리 불교가 결합할 수 있었던 것은 티베트 불교 겔룩파가 육식을 허용하고 가족을 이루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대부분 몽골인들은 샤머니즘을 믿고 숭배했기 때문에 각 집마다 종교가 일반화 돼 있다. 불상과 불화를 게르 안 재단에 모셔 놓고 매일 매일 기도한다. 주부는 아침 일찍 가장 먼저 우유차를 끓인다. 그리고 차를 끓여 불상 앞 작은 은잔에 바치고 그 다음에 여러 신에게 차를 뿌린다.

자연 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적막과 고독을 인내하는 유목민들에게 옴마니 반메 훔이라는 주술적인 독경은 극적이고 신비적이며 위안을 주는 그 무엇이었으리라.

대추가 절로 붉어질 리가 없다. 그 안에는 태풍과 천둥, 벼락 몇 개가 있다. “흐르지 않고 모여 사는 순간 멸망할 것”이란 칭기즈칸의 말처럼 초지를 따라 머물지 않고 흐르는 삶을 살아야하는 몽골인들. 그네들의 신앙이 절로 지극할 리가 없다. 그네들의 수많은 고독과 인내로 젖어 있는 삶에 자비로운 신으로 자리한 관음보살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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